▲ 1950년대 활판기로 신문을 인쇄하는 모습(사진 상)과 제주신문 제2창업 신사옥 준공식에서 본사 김평진 회장 김대성 사장이 이광표 한국신문협회장 및 국내 각계 인사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 중). 1988년 신사옥 새윤전기 시험가동 끝에 첫 발간된 신문을 보고 있는 김대성 사장(사진 하).

오늘로 제주일보가 지령 2만호를 기록했다. 지령(紙齡)은 신문의 나이로 창간호부터 2만번째 신문이 세상에 나온 기록적인 날이다.

 

1945년 10월 1일 제주 역사상 최초의 우리 글 신문인 ‘제주신보’가 창간된 지 65년 2개월 여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이 기간 제주일보는 6.25전쟁과 4.19혁명, 산업화, 민주화 등을 거치며 굴곡의 현대사 현장을 지면에 고스란히 담아내며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을 남겨왔다.

 

▲제주신보의 창간과 혼란기=8.15 광복 후 한 달 보름만인 1945년 10월 1일 제주신보가 창간됐다. 제주신보 창간호는 타블로이드판으로 5호 활자로 단면 인쇄됐다.

 

창간호에는 미군 진주와 미군 사령관 파우엘 대령과의 회견, 일본군 작전참모와의 회견으로 한국인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보장책,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철수 일자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1961년 5.16군사혁명이 발생하자 제주신보는 16일 ‘오늘 새벽 서울에 군사혁명-방송국.정부기관 접수-장 총리.각료 등 행방불명-혁명위서 반공강화 등 성명’ 제하의 호외를 발행했다.

 

제주신보는 이 해 12월21일자로 지령 5000호를 기록했다.

 

이듬해인 1962년 11월20일자로 제주신보와 제민일보사는 ‘제주신문(濟州新聞)’으로 통합하고 단일 발행에 들어갔다.

 

▲기초 다진 제주신문=1963년 제주신문은 김선희 전무를 사장으로 선출하고 ‘불편부당의 엄정중립’을 사시로 내세웠다.

 

1965년 2월 21일자로 지령 6000호를 기록했고, 6월1일에는 일본 동경도(東京都)에 총국을 설치하고 총국장에 김평진 이사가 취임했다. 이때부터 총국은 일본 국내의 제주신문 각 지사를 총괄하면서 취재 및 보급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28일에는 그동안의 조간시대를 마감하고 석간체제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1966년 신년호를 통해 제주신문은 “새해부터 향토의 산업 개발과 체육 진흥의 새로운 도약대를 마련하고자 2대 연중사업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사고는 이어 “66년도에는 퇴비.고구마 2개 부문의 증산왕을 선발하고 축구제주의 이름을 다시 떨치는 데에 이바지하고자 제주도축구협회와 공동으로 청룡기쟁탈 전도 초.중.고 축구대회를 갖는다”고 밝혀 본격적인 ‘本社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6월20일자에는 문화면에 ‘해연풍’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생활 주변의 문제들을 가벼운 단상 형식으로 엮어 나간 ‘해연풍’은 지식층의 각계 인사들로부터 원고를 받아 게재한 본지의 대표적 시리즈물 가운데 하나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지 창간 21주년인 11월20일을 이틀 앞둔 18일자 본지 4면에 제주신문 사상 처음으로 전면광고가 등장했다.

 

이 전면광고는 창간 21주년 축하광고로 동아제약과 삼일제약 2개사의 광고였다.

 

1966년이 저물어갈 무렵 본사는 시설면에서 새로운 금자탐을 이룩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신문제작의 최종단계인 인쇄시설을 종전 평판 인쇄기에서 대형윤전기로 교체한 것으로 일본 대판인쇄기계제작소의 마리노니 고성능 색쇄 장치 윤전기로서 시간당 3만부를 찍을 수 있어 신문제작 시간을 앞당기게 됐다.

 

1967년 7월15일자 본지는 사상 처음으로 1면 광고를 2색(色)으로 인쇄해 지면의 색인쇄를 실현했다.

 

1968년 11월20일 창간 23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11월18일 제주신문은 기념행사의 하나로 ‘바둑제주도왕위전’계획을 마련했다.

 

1969년 7월에는 제주지역 학생축구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백호기쟁탈 전도 초.중.고교 대항 축구대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22일자 본지 지상에 사고로 발표했다.

 

이후 백호기 축구대회는 명실상부한 제주지역 최대의 축구제전으로 현재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다.

 

1970년에는 5월 가정주간 행사의 하나로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모자사생대회’를 개최했다.

 

같은 해 11월10일자에는 도민의 오랜 숙원이던 일주도로 181km 포장이 완공됨에 따라 이를 경축하기 위해 ‘도일주 역전 마라톤대회’를 개최한다는 사고가 발표됐다.

 

도일주 역전마라톤 대회는 1971년 4월10일 제주도청 앞 광장에서 개막됐다.

 

1970년 12월에는 여객선 남영호 대참사에 대한 대대적 보도가 이어졌고 1971년 1월1일자 신년호는 제주신문 사상 처음으로 12개 면을 발행했다.

 

1973년 2월9일 본사는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회장에 김평진씨를 새롭게 선출했다. 또 4월 19일에는 제주시 일도1동 1280번지 구사옥 자리에서 신사옥 기공식을 가졌다.

 

이날 기공한 신사옥은 대지 296평에 지상 3층 지하 1층, 연건평 421평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다.

 

같은 해 11월 20일 7개월만에 북신로의 신사옥이 완공됐다. 이날을 계기로 본사는 튼튼히 닦아진 발전의 토대 위에 충실화의 길을 다듬을 결심으로 사시를 ‘정론직필. 민권수호.성실봉사’로 개정했다.

 

1974년 7월1일 본사는 국내외 뉴스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최신 텔레타이프 2대를 설치하는 등 수신시설을 확충해 국내는 물론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국제문제. 경제. 문화. 스포츠 등 새소식을 보다 알차고 정확하게 독자에게 제공하게 됐다.

 

1978년 2월1일자로 지령 1만호를 기록한 본지는 보다 빠르고 선명한 신문제작을 위해 일본에서 횡형 고속도 윤전기를 도입했는데 시간당 16페이지의 지면을 한꺼번에 8만부 인쇄할 수 있었으며 2색도 광고인쇄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 10월28일자 본지는 간지 4개면을 사상 처음으로 컬러면으로 제작했다.

 

1980년 국내 언론계의 격변 속에서 본사는 11월26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대표이사 사장에 김대성씨(현 제주일보 회장.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장)를 선출했다.

 

▲연동 신사옥 시대 개막과 제2의 창업=본사는 1988년 6월20일 2000년대를 향한 제2창업의 날을 맞았다.
2000여 평의 대지위에 지하 2층, 지상 5층, 연건평 1900평으로 지어진 연동 신사옥은 제주언론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됐다.

 

이날 본지는 창간 43주년을 기념하고 새사옥 준공의 제2창업을 기리기 위해 특집 14개 면을 포함, 모두 24개 면을 발행했다.

 

김대성 사장은 이날 창간 43주년 기념사를 통해 “80년대 들어 만난을 헤치고 20년 후면 펼쳐질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의욕적인 백년대계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고 전제, “그것이 바로 제주신문이 제2창업을 기약하는 신사옥 건설 8개년 계획이었으며 오늘 마침내 그 꿈이 현실로 커다란 결실을 보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9년 11월 창간 이후 본지의 가장 큰 아픔인 발행중단까지 치닫게 한 ‘제주신문 사태’가 발생한다.

 

본사는 26일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해 제주신문 사태 수습을 위해 주총의 내용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1990년 1월5일자로 폐업키로 결정했다.

 

이사회와 제주신문을 아끼는 사원모임 소속사원들이 중심이 돼 발행중단 사태에 봉착한 제주신문 살리기 운동이 본격화됐으며 재발행 작업에 돌입했다.

 

1990년 본사는 최첨단 컴퓨터 신문제작시스템을 도입해 재발행에 들어갔다.

 

같은해 10월 본지는 창간 45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으로 최남단 마라도에 나무를 심는 ‘마라도를 푸르게’ 운동을 펼친다고 도민들에게 알렸다.

 

1992년 1월15일부터 본사는 제주지역에 배포할 조선일보 현지인쇄를 대행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20일 본지 창간 47주년을 맞아 제2별관 사옥을 준공하고 2년전 독일에 주문제작을 의뢰했던 신문인쇄용 최첨단 윤전기 및 부대기계설비를 도입해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때 도입된 윤전기를 국내에 시설된 신문윤전시설 가운데 최대면수인 40면을 흑백.컬러 동시에 합쇄할 수 있는 세계 신문업계의 최신 하이테크 품목으로 합지에서부터 인쇄.포장.발송 등에 이르기까지 신문제작 하부공정을 모두 자동화하는 동시에 이를 상부제작공정인 CTS체제와 연계함으로써 신문 전 제작공정을 완전 자동화해 국내 언론사 가운데 최고의 시설을 갖추게 됐다.

 

1993년 5월1일부터 본지는 매일 20개 면 발행체제에 돌입했다. 이해 창간 48주년을 계기로 사무부분의 전산화와 아울러 신문제작시스템을 기존의 CTS에서 문자와 컬러화상을 일괄처리하는 전산종합시스템(CIS)로 전환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일간지로서는 처음으로 최신 편집프로그램인 QUARK3.1을 채택함과 동시에 세계 최초로 스피드웨어를 장착한 2페이지 4도분판출력기. 고성능 사이텍스 컬러스캐너 등의 도입으로 최첨단 컴퓨터시스템을 설치.완료하고 가동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21일부터는 동아일보사와 동아일보 현지인쇄 대행계약을 체결하고 이날부터 인쇄대행을 시작했다.

 

1994년 5월 20일에는 중앙일보 현지인쇄 대행계약도 체결하고 이날부터 인쇄하기 시작했다.

 

이해 8월26일자로 본지는 역사적인 지령 1만5000호를 기록하고 이를 기념하는 특집을 포함해 36개 면을 발행했다.

 

본지는 같은 해 11월3일자부터 본문을 모두 한글화하는 일대 혁신을 단행했다. 창간 이래 1960대로 접어들면서 여러차례 시도해 온 본문의 한글 전용을 창간 50주년을 1년 앞 둔 시점에서 드디어 실행한 것이다.

 

12월 6일자부터는 컬러화 시대에 부응하면서 보다 산뜻하고 선명한 지면으로 독자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컬러면을 8개면으로 확충했다.

 

이는 전국 종합일간지 가운데 동아일보에 이어 두 번째로 8개 면의 컬러화에 들어간 것이다.

 

1995년 5월 20일 국제언론인협회(IPI) 서울 총회에 참가한 세계 신문.방송.통신사 사장, 주필, 편집국장 등 세계 굴지의 언론인 70여 명의 방문을 받았다.

 

이 해 6월20일 본사는 실로 뜻깊은 창간 50주년을 맞이했다. 이날 한국신문협회는 본사 3층 회의실에서 제239차 이사회를 개최하고 본지 창간 50주년를 축하했다.

 

▲제호 제주일보 시대와 인터넷 뉴스 출범=본지는 1996년 11월 1일자로 제주신문 시대를 마감하고 한글 제호인 ‘제주일보’ 시대를 새롭게 열었다.

 

또 기존 세로쓰기에서 전면 가로쓰기 편집으로 전환하고 지면을 대혁신했다.

 

1997년 1월 17일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김대성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부회장(제주일보 사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같은 해 5월 26일에는 제주일보사와 매일경제신문사간 상호 기사교류 및 활용에 관한 협약을 체결해 ‘제주일보-매일경제 네트워크’가 개통됐다.

 

이 해 10월 1일부터 본사는 뉴미디어 사회의 프론티어 역할을 할 제주일보 전자신문을 개통하고 정오를 기해 인터넷을 통해 기사와 컬러화상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본지는 1998년 6월13일자 사고를 통해 제주일보 창간기념일을 10월1일로 환원한다고 밝혔다.

 

이날 사고는 “제주일보는 조국광복과 함께 1945년 10월 1일 제주신보 제호로 탄생했다. 제주신보는 4.3사건과 6.25전쟁을 겪고 4.19혁명, 5.16 이후 1962년 11월 20일 제주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으며 이로부터 창간기념일을 11월 20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신문은 80년대 들어 신제주에 부지와 사옥을 마련하고 새 설비도 오입해 1988년 6월 20일 제2창업 시대를 열었다”며 “이로부터 제주신문은 6월 20일을 창간기념일로 삼았다”고 밝혔다.

 

사고는 “이제 제주일보는 올해부터 창간기념일을 10월 1일로 되찾으려 한다”며 “제주일보가 창간기념일을 광복의 그날로 돌아가는 것은 오욕의 역사, 수난의 역사, 혼돈의 역사를 딛고 면면히 흘러나온 빛나는 전통을 계승해 내일의 발전을 기약하는 바른 자세를 가다듬으려 하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본사는 2000년 3월 15일부터 독자 제일주의에 맞춰 더 깊은 정보를 담기 위해 발행지면을 24면으로 증면했다.

 

같은 해 4월 6일에는 중앙일보사 회의실에서 김대성 사장과 중앙일보 금창태 사장이 양사간 전면적 협력을 추진키로 하고 전략적 제휴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2000년 10월 1일 창간 55주년을 맞아 본지는 ‘통일시대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10월 1일자 36개면, 10월 3일자 32개면, 10월 4일자 32개 면 등 특집호를 3일간 발행했다.

 

2001년 2월 23일자로 제주일보는 지령 1만7000호를 발행했다.

 

2002년 10월 1일에는 창간 57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처음으로 원 클릭서비스를 구현한 인터넷 신문 ‘제주뉴스 닷컴(jejunews.com)'을 선보였다.

 

제주뉴스 닷컴은 기존의 인터넷 신문의 문제점과 디자인 로딩속도, 이용자 편의시설의 미비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2003년 4월 14일부터 본지는 독자제일주의 원칙아래 ‘월요일자 발행, 일요일자 휴간’을 단행했다. 또 이날부터 영문제호도 ‘The Jeju Daily News'로 변경했다.

 

본사는 2004년 들어 (주)다음커뮤니케이션(대표이사 이재웅)과 전국 네티즌에게 제주지역 뉴스 제공에 대한 업무협약 조인식을 가졌다.

 

본사는 2005년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김대성 대표이사를 회장 겸 발행인으로 선임했다.

 

▲제3의 도약 준비=1945년 광복과 함께 창간한 65년 전통의 제주일보는 이제 지령 2만호를 기록하게 됐다.

 

신문을 제작해 제주도민과 독자를 찾아간지 2만일이 되는 날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제주일보는 도민과 함께 영욕의 65년을 함께 하며 줄기차게 달려왔고 앞으로도 지령 3만호를 넘어 더욱 발전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제주일보는 탑동시대의 태동에 이은 연동시대의 개화를 거쳐 급변하는 언론환경에 맞춘 제3의 출발점에 서 있다.

 

앞으로도 도민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각오로 제3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대영 기자
kimdy@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