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로 지령 2만호를 기록한 제주일보, 도민의 사랑으로 가능했다.
대한민국이 광복된 1945년, 10월 1일 제주역사상 최초의 한글신문인 제주신보로 출발한 제주일보가 지령 2만호를 맞았다.
창간호에는 미군 진주와 미군 사령관, 일본군 작전참모와의 회견으로 한국인의 새명과 재산에 대한 보장책,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철수일자에 관한 기사를 크게 실었다.
1948년 4.3사건 당시에는 김경진 편집국장이 산사람쪽의 포고문과 담화문을 인쇄해주었다는 혐의를 받아 군부에 의해 처형당하고, 1951년에는 계엄사령부에 의해 신문사가 접수되는 등 역사적인 사건 때 마다 고비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분연히 일어서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역사를 기록했다.
1000호 단위의 주요 지령호를 중심으로 당시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통해 제주의 어제를 되돌아본다.

▲지령 3000호(1956년 10월 21일)
1956년 10월 21일자로 제주일보(당시 제주신보)는 지령 3000호를 기록하면서 23일자로 편집강령을 발표했다. 길성운 제주도지사 등 도내 주요기관.단체장의 축사를 비롯해 본사 연혁과 주요 행사 등도 실었다.

▲지령 4000호(1960년 1월 10일)
제주신보는 1960년 1월 10일자로 지령 4000호를 발행했다. 4000호를 발행한 뒤 불과 2개월여 만에 3·15 부정선거가 자행되면서 3월 17일자에 3.15 대선 개표 결과를 호외로, 다음달 26일에도 호외를 발행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의사 표명 기사를 실었다.

▲지령 5000호(1961년 12월 21일)
제주신보는 이날부터 ‘휘나레 1961년’을 30일까지 10회 연재해 분야별로 1년 동안의 발자취를 점검했다. 이 때 다룬 내용은 ▲혁명정부와 제주도 등 10개 분야이다.

▲지령 6000호(1965년 2월 21일)
제주신문은 지령 6000호를 맞아 앞으로의 보도 태도와 지면 제작방향 등에 대한 독자의 충언을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결과를 이 날짜에 실명으로 특집 보도했다.

▲지령 7000호(1968년 5월 13일)
이 시기는 월남전이 마무리돼 가는 시기로 이 날짜 제주신문은 미국과 월맹의 종전교섭을 위한 공식회담 소식을 1면에 실었다. 3면에는 제주시 상수도 수원으로 외도천이 1969년부터 1971년까지 3년에 걸쳐 개발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령 8000호(1971년 8월 6일)
이날 제주신문은 1면에 제주항이 집중 개발된다는 보도를 내고 3차 계획 기간 11억원을 투입 대형 관광항만부두로 개발한다고 보도해 제주의 관문으로서 제주항이 본격 개발된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제19호 태풍 ‘올리브’가 영동지방을 강타해 산사태와 물난리로 20명이 사망하고 24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사실을 싣고 있다.

▲지령 9000호(1974년 10월 29일)
이날 1면에는 고(故) 육영수 여사의 저격범인 문세광씨가 일본인 변호인을 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리 이유서를 접수한 사실을 머리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또 3면에는 제주의 관광소득이 주민들에게 직결되기 위해서는 민박관광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기사가 실려 본격적인 관광 개발을 앞두고 도민들이 거는 기대를 반영했다.

▲지령 1만호(1978년 2월 1일)
이날 1면 머리기사로 제주와 목포 간 카페리가 운항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려 제주의 본격적인 카페리 운항시대를 알렸고 이(里)·동(洞) 단위에 전화가 가설된다는 기사가 실려 전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다.

▲지령 1만1000호(1981년 5월 4일)
북제주군 한경면 중산간도로 확장공사 중 1차 사업이 180일간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는 기사가 실려 도내 중산간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역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령 1만2000호(1984년 7월 31일)
이 날짜 7면에는 제7호 태풍 ‘에르’가 제주를 피해 갔다는 기사와 함께 태풍에 따른 대피항으로서 제주항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지령 1만3000호(1987년 12월 5일)
당시 세계를 경악시켰던 대한항공 여객기 공중 폭파 사건과 관련해 한국정부가 범인인 마유미(김현희)의 인도를 요청한다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실어 당시 한국민의 관심사를 반영했다.

▲지령 1만4000호(1991년 5월 31일)
1면에는 한국과 소련 간 항공 업무를 위한 협정체결이 발효돼 제주~중국~소련을 잇는 항공노선이 개설된다는 기사를 싣고 있다.

▲지령 1만5000호(1994년 8월 26일)
이날 지면은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민선 군수로 가는 길’, ‘내년 지방 4대 선거 누가 나올까’ 등의 지방선거 관련 기사를 다뤄 당시 4대 지방선거에 따른 도민들의 관심사를 풀어줬다.

▲지령 1만6000호(1997년 11월 26일)
15대 대선을 20여 일 앞둔 이날 1면에는 22일간 선거전 돌입이라는 제목 하에 각 당의 움직임을 대선 주요 일정과 함께 싣고 있다. 또 14면과 15면을 할애해 주요 3당 후보인 당시 이회창 후보, 김대중 후보, 이인제 후보의 ‘대선 후보들이 걸어온 길’ 등 후보들에 대한 집중 분석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지령 1만7000호(2001년 2월 23일)
제주국제자유도시추진단이 출범해 본격적인 국제자유도시 추진이 시작된 이날 1면에는 슈퍼젖소 탄생 기사와 함께 국제자유도시 5대 촉매사업 타당성 검토 기사를 싣고 있다.
또 22면에는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한 제주 출신 고관송 육군 소위의 선행기사도 실었다.

▲지령 1만8000호(2004년 5월 25일)
이날 제주일보는 6.5재보선 국면을 맞아 공식선거전에 돌입한 후보들의 대세몰이 행보를 머리기사와 3면 전면, 사회면 등을 할애해 집중 보도했다. 동분서주하는 후보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표심 향배를 분석, 전달했고 미디어 선거운동을 통한 이미지 연출의 중요성도 지적했다.

▲지령 1만9000호(2007년 8월 29일)
1면에 ‘올 노지감귤 7만톤 육박’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감귤 적정 생산과 유통대책에 비상이 걸렸다는 내용을 다뤘다. 사회면에는 ‘관음사 인수과정 물리적 충돌’, ‘수학여행단 집단 식중독’ 등의 기사를 실었다.
<김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