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일보 애독자인 현화진 전 제주도교육위원회 의장이 지난 3일 제주시 연동 자택에서 제주일보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제주일보를 펼쳐보면 제주의 모든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아요.”

6일 제주일보 지령 2만호 발행을 맞아 60년 애독자 현화진 전 제주도교육위원회 의장(82.제주시 연동)은 제주일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현씨가 제주일보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대 교육계에 몸담으면서부터이다.

“당시에는 제주도내에서 유일한 신문이었기 때문에 제주도민이라면 제주일보를 봐야 했어요. 도내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의 소식을 담고 있죠. 제주도민과 동고동락하면서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고 봐야죠.”

현씨의 말처럼 제주일보는 대한민국 광복이후 지난 65년간 굴곡의 현대사를 기록해온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언론은 아주 정확해야 합니다. 6하원칙에 맞게 사실을 보도해야 하죠. 그리고 제보가 왔을 경우에도 상대방 입장을 확인하게 되면 비교적 공정하게 다룰 수 있죠.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제주일보가 이처럼 ‘정론지’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왔다는 믿음에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아침에 일어나면 대문을 열고 신문을 펼쳐보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종합면을 필두로 사회, 행정자치, 문화, 경제, 스포츠, 기획, 열린페이지, 사람과사람들, 오피니언면을 차례로 들여다본다.

특히 제주의 대표적인 현안과 사회현상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여주는 사설, 전문가들의 칼럼, 각계 각층에서 보내오는 ‘나의 의견’은 빼놓지 않고 읽는다.

그는 산수를 넘긴 고령에도 제주특별자치도문화재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하는데다 문학작품에도 왕성한 의욕을 보이면서 문화분야 소식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문 기사를 묻는 질문에 “1950년대 중반으로 기억되는데 예술문화단체 모임인 예총 창립을 특집으로 다뤘던 게 기억이 나요. 당시 양중해 선생의 예술제 서시도 소개됐죠.”라고 회상했다.

그의 제주일보에 대한 애정은 신문의 주요 내용을 스크랩해 보관해 둔 것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특히 그가 제주일보에 투고한 기고문들은 온전히 자신의 기록집으로 남았다.

1995년 3월 한국지역사회교육제주도협의회장 당시 기고한 ‘내가 겪은 4.3사건’은 세차례에 걸쳐 기획시리즈 형태로 보도됐다.

또 1994년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동포 실업가 안재호 사장, 1997년 한국 근현대 서단을 이끈 예술가 소암 현중화 선생, 2002년 교육계 원로인 이기휴 전 서귀농고 교장이 각각 별세하자 투고한 ‘추도사’들도 잊을 수 없는 기고문들이다.

그는 앞으로도 제주일보가 제주를 대표하는 언론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사회의 미담 사례를 발굴해 소개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그는 또 다양한 사람들이 전하는 문화강좌 등 새로운 코너가 마련됐으면 하는 주문도 곁들였다.

그는 지난 3일 오후 제주시내 자택에서 제주일보와 인터뷰를 시작할 때와 끝마칠 때 ‘지령 2만호 축하’ 인사를 연이어 건넸다.

“사람으로 보면 환갑을 맞이하고도 5년이 지났어요. 제주일보의 창간 65주년은 대한민국 지방 신문에서는 처음 씨앗을 뿌린 것이죠. 대단한 역사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도민,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신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재범 기자 kimjb@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