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문화예술은 섬이라는 자연환경적 영향으로 ‘중앙문화와의 단절’이라는 악조건 속에 형성된 가운데 타 지방과의 교류 차단으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어왔다.

제주일보 지령 2만호를 맞아 문학, 미술, 음악, 연극을 중심으로 1940년대 이후 제주 문화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문학
광복 이후 제주에서 발행된 최초의 잡지는 1946년 1월 창간한 ‘신생(新生)’으로, 근대지역문학의 활동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 제주문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대표적인 피란 문인으로는 계용묵, 장수철, 옥파일, 김묵, 최현식 등으로 당시 계용묵을 중심으로 제주시내 다방, YMCA강당, 우생당서점, 학교 강당에서 시 낭송회, 문학작품 합평회, 문학의 밤 등의 행사를 가졌다.

현대사의 비극인 6.25 전쟁이 역설적이게도 침체 상태에 있던 제주 문학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1950년대에는 ‘신문화’, ‘흑산호’, ‘제주문화’, ‘비자림’, ‘문주란’, ‘시작업’ 등 잡지 및 문학동인지들이 발간됐다.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의 전신인 제주문학동호인회가 1956년 조직됐고, 1974년에는 자유실천문인협회가 창립됐다. 1994년에는 진보적인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가 발족됐다. 1998년에는 기존 제주민예총 문화분과 위원들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민족작가회의 제주도지회가 결성됐다.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는 1968년 한국문인협회로부터 지부 인준을 받았지만 복잡한 사정에 의해 1970년 9월부터 해체 상태에 들어갔다. 이후 1972년 8월 재결속됐고 1998년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로 승격됐다.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는 1991년 제주신인문학상을 제정했고, 2001년부터는 제주문학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매년 탐라문화제 학생 문학백일장을 주관하고 있고, 2002년에는 제83회 전국 체육대회 기념 전도 학생문확백일장을 서귀포문협화 공동 주최했다.

▲미술
6.25 전쟁으로 우리나라 미술 활동이 전반적인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6.25는 문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제주의 미술에 새로운 여명기를 태동시켰다.

이중섭, 장리석, 홍종명, 최영림, 김창열, 이대원, 최덕휴, 구대일, 옥파일 등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4년 이상 제주에 머물렀다.

이들은 생활에 쪼들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이나 후진양성에 적극적이지는 못했지만 당시 제주의 미술학도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제주 현대미술이 싹트는데 좋은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동인전과 개인전이 활발해지면서 서서히 미술인구의 저변확대가 형성된다.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들어서며 전문전시관이 개관되면서 제주미술은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시기로 발돋움한다.

1985년 11월에는 제주도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전국미술인대회가 열리면서 제주미술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1995년 8월 개최된 제주프리비엔날레는 제주에서 유례가 없던 대규모 국제행사로 지역 미술계의 관심을 모았지만 섣부른 유치에 따른 경제적, 행정적 어려움과 미술인들간의 불신, 전문성 결여 등 숱한 문제점을 남겼다.

▲음악
1946년 제주 최초로 제주중학교 15인조의 교악대가 발대됐다. 1948년 제주북초등학교에서 음악회가 마련됐는데 이것이 광복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음악 행사였다.

1950년대 제주의 음악문화는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으로 제주에 피란온 도외 음악인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계정식, 이성재, 이성삼, 변훈, 박재훈, 김금환, 고희준 등의 활동은 제주의 음악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됐다.

1954년에는 제주 최초의 예술제가 오현고등학교 주최로 열렸다.

1962년에는 한국음악협회 제주도지부가 결성되면서 성인으로 구성된 탐라합창단이 조직됐다.

1970년대에는 제주 YWCA어머니합창단, 제주YMCA CLEE클럽, 돌체칸도합창단, 꽃그네소녀합창단이 창단됐고, 1973년 한국관악대지도자협회제주도지부가 결성됐다. 이후 전도에 하나 둘씩 교악대가 창설됐고, 교악대 간 긴밀한 교류가 이어졌다.

1985년에는 제주시립예술단이 창립되면서 제주시립교향악단과 제주시립합창단이라는 전문 음악단체가 제주의 음악계를 이끌었다.

1988년에는 제주도문화회관이 완공되면서 제주음악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1990년 초에는 서귀포시립관악단이 창단,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연에 나서면서 서귀포지역 음악 발전에 기여했다.

같은 해 시작된 탐라합창제는 제주도내 합창단이 대거 탄생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현재 제주국제합창제로 성장했다.

▲연극
제주연극의 시발점은 제주출신 김진문(본명 김대희)이 중앙의 극단 ‘김희좌’ 일원으로 1934년 ‘전과자’, ‘홍길동전’ 등의 극본을 쓰고 연출과 배우로 출연하면서 극단을 이끌고 와 제주에서 공연을 가진데서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세브란스의전의 홍순억, 제주농업학교의 김기환 등을 중심으로 학생극 운동이 일어났다. 1947년 제주여중은 박애봉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춘하추동’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것이 제주지역 학생연극의 시발이 되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중앙연극인과 동호인들이 대거 제주로 피란을 오면서 모슬포 제1훈련소의 장병위문공연을 중심으로 연극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특히 육군 제1훈련소에 조직된 연예대의 활동은 도민들에게 신극과 무대예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각인시켜주었다.

1962년 4월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제주도지부가 결성되면서 제주도연극협회가 탄생됐다. 같은 해 5월 제주도 주최, 예총제주도지부 주관으로 제1회 제주예술제가 열렸다. 제주예술제는 이후 한라문화제를 거쳐 현재 탐라문화재로 명칭이 바뀌었다.

1964년에는 제주시민회관이 개관되면서 예술행사를 비롯해 강연회, 체육회 등 다목적 강당으로 활용됐다.

1974년 7월에는 연극동호인들의 모임이었던 제주도연극협회가 한국연극협회에 정식 등록되면서 제주도지부로 인준을 받았다.

이 시기에 제주대, 제주교대, 제주간호전문대학(현 한라대학) 등에 연극반이 조직됐다.

1980년 1월 극단정낭극장이 창단됐고, 같은 해 8월에는 마당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수눌음이 창단 작품으로 ‘땅풀이’를 공연함으로써 연극의 전문화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에는 극단수눌음, 극단한올래, 극단눌, 극단소리, 극단가람, 놀이패한라산, 극단무, 극단하늘극장, 극단오름 등이 창단, 소극장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이 이어졌다.

1992년 제주도가 유치한 제10회 전국연극제는 제주연극이 성장하는 큰 밑거름이 됐다. 전국연극제 제주 개최 이후 연극 붐이 조성되면서 극단자유, 극단세이레, 다솜, 극단아라, 극단거리 등이 창단됐다.
<김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