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 지상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남, 김정은 등의 이름이 너무나 흔하게 올라 활자로 질주한다. 뿐만 아니라 자주 떠올라 영상거리로 눈요기를 하면서도 무언가 석연치 않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해방 이후의 우리 한인에게 북쪽 사람으로서 널리 불러진 이름이 있다면 첫째는 김일성(金日成)이요, 둘째는 김정일(金正日)일 게다. 이들에 대한 많은 기록이 홍수처럼 쏟아져 알릴만한 일은 다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몇 가지에 대해 알려지지 않는 의문점은 수수게끼처럼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첫째 그들의 본관은 어디로 쓰고 있을까? 둘째 그들의 이름은 항렬자(行列字)를 어겨 왜 범자(犯字)를 함부로 쓰고 있을까? 셋째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영희(高英姬)는 제주 출신 재일교포 2세라 하는데 과연 제주의 어느 마을 사람일까? 교포 2세까지는 제주인으로 보기 때문에 관심이 더욱 높아진다.

 

본관은 우리 성씨에 반듯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는 조선이 유교입국과 더불어 확립한 가장 조선적인 것이다. 그래서 ‘세종실록 지리지’에 분명히 이를 밝혀 “각 성씨마다 본관은 무엇 무엇이다”라고 정확히 적혀 있다. 이곳에 빠져 있는 본관은 본관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의 본관은 전주(全州)라는 사실을 나는 이북 피난민을 통해 들은 지 이미 오래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보면 전주에는 토성(토착성)이 9개가 있고, 다만 속성이 넷인데 그 가운데 양(梁)·장(張)과 김金씨는 둘이니 모평(牟平)에서 온 김씨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온 김씨 등이 있다. 그들 시조는 모두 향리(鄕吏)였다. 김일성의 본관이 전주라면 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일 것이다.

 

다음 항렬(行列)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동양 3국에서 모든 서민까지 족보를 갖춘 곳은 오직 한국뿐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왕족이나 귀족 중 특히 일부에만 족보를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만민 평등주의를 실현한 위대한 피붙이다. 그리고 우리 겨레는 같은 항렬 형제끼리는 지정된 항렬자(行列字)를 사용, 오늘날 까지 잘 지켜져 서로의 피붙이의 형제항렬·숙질(叔姪)항렬·조손(祖孫)항렬 등을 쉽게 알아 서로의 친숙감을 배가시켜 준다.

 

그런데 웬걸 김일성, 김정일은 서로 ‘날일(日)’자를 썼으니 이는 곧 우리 조상들은 이름에 범자를 썼다고 하여 웃어른에게 결례되는 일로 여겼다. 더구나 김정일은 큰아들을 김정남, 막내를 김정은이라고 부자지간에 ‘바를 정(正)자’로 이름을 지어 불렀으니 이 역시 결례이다. 그러면서도 정남(正男)·정은(正殷)이란 형제항렬이니 이는 우리의 격에 맞다. 김일성 3대의 항렬 이름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을까? 황장엽(黃長燁)이 살았을 때에 물었어야 할 것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다음은 김일성주석의 며느리이며 김정은 이른바 대장의 어머니 고영희(高英姬)는 과연 어떤 여인일까? 1953년 일본에서 제주 출신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1960년대 초에 북송선을 타고 가족과 함께 입북, 1981년 김정철(金正哲)을, 1983년 김정운(金正雲)<후일 정은>을 낳았다. 김정일은 고씨가 만수대 무용단원으로 활약할 당시 반한 것이다. 그녀의 부친은 조련계의 말로는 “일본 황실 유도사범”이라고도 하고, 민단계의 말로는 “일본 야쿠샤(의협꾼·깡패)”라고도 하나 공식기록은 없다. 고향은 함덕리, 혹은 고산리라고 하나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한때 방송인 고여진(高麗珍)의 자매라 하여 유언비어로 전파되었으나 이는 잘못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다. 답방으로 다음은 한국을 방문하기로 언약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지금 건강문제로 남한을 방문하기란 더욱 어렵고, 김정은이나 다음 기회가 닿아 외가의 땅을 찾는 날이 하루속히 실현, 통일의 기회로 반전하면 오죽이나 좋을 걸.
<제주도교육의정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