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창간 독자 인터뷰
제주일보 창간 독자 인터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칠순을 넘긴 윤세민씨(74)는 지금도 새벽 4-5시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제주일보를 찾는다.

제주일보가 창간된 1945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읽어왔기 때문에 배달이 늦는 날에는 지국에 불호령이 떨어진다.

40년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제주일보에 보도된 주요 기사를 스크립해 고이 보관해 오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제주일보에 대한 윤씨의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윤씨는 “스크랩을 위해 한번은 없어진 날짜의 신문을 수소문한 끝에 열흘만에 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윤씨의 말대로 부인보다 신문을 더 ‘사랑’하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부친 때문이란다.

제주일보가 발행되지 않았던 1940년대 초반 윤씨의 부친이 일본신문을 가져다 주며 ‘사회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신문을 읽어야 한다’며 강제로 신문을 읽게 했다는 것.
1945년 제주일보(당시 제주신문)가 발행되자 그동안 읽어오던 일본 신문을 끊고 첫 인연을 맺은게 지금까지 왔다.

윤씨에게는 모두 부친과 연결된 좋았던 추억과 씁쓸했던 추억이 제주일보에 있다.

“1960년 12월 아버지가 민선 중문면장에 당선됐을때 너무 기쁜 나머지 당시 월급을 봉투째 신문사에 가져가 광고를 냈지”
윤씨는 “당시에는 신문에 광고를 내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고 광고비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며 스크립해둔 당시 광고를 펼쳐 보였다.

윤씨에게 신문 보도내용이 원망스러웠던적도 있다.

1962년 초 부친이 위암으로 투병중일때 ‘영국 수상 위암으로 사망’이라는 기사를 보며 “일개 국가 수상도 이런병으로 가는데 나야 어쩌랴”하며 탄식할때는 신문이 그렇게 원망스러울수가 없었다고 한다.

요즘 윤씨에게 바램이 있다면 신문에 사회 원로들의 목소리를 담는 코너가 신설되는 것이다.

윤씨는 “요즘 신문에는 젊은사람들의 목소리 뿐”이라며 “‘원로들의 마당’같은 코너를 마련해 나이든 사람들의 의견도 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신문 보도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듯이 신문을 만들면 독자가 외면하기 때문에 신문이 망할 수밖에 없어”
윤씨는 “날까롭게 쓸 것은 쓰면서 사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써야 사회가 발전된다”며 “제주일보만큼은 도민의 입과 귀를 대신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론 직필을 펼쳐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1997년 서귀중앙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윤씨는 현재도 노인대학, 문화교실등에서 강의를 하는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김문기 기자>kafka71@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