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모습 잃고 있는 민주당
제모습 잃고 있는 민주당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정치권의 ‘제3신당’ 창당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 중심세력은 ‘국민의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한동씨,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김중권씨, 그리고 ‘포스트 DJ’를 꿈꿔온 이인제씨다.
지금 이들은 권력 중심부에 머무를 당시 자신들의 버팀목이 되어 온 민주당을 외면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 분당(分黨) 위기라는 된서리를 맞은 꼴이다.
민주당이 이런 상황에 몰린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이들 몇몇 인사의 이탈 움직임 탓인가.
그렇지 않다. 민주당 스스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선택으로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이 가운데 ‘정체성 상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정체성 상실’은 자기 반성에 소홀하고,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데서 비롯됐다. 국민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자기 변명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부패정권’의 책임에 대해 민주당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로 한정시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당내 몇몇 핵심 인사가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된 사실도 애써 감추려 한다.
인사문제를 비롯해 ‘국민의 정부’의 국정 운영에 실패한 측면이 있다면, 민주당도 그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민주당이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 시스템과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민주당의 상당수 인사는 장관 등 요직을 거쳤다. 그런 후 당으로 복귀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주장하며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 극복과 남북관계 개선 등 국민의 정부가 이룬 성과에 대해선 자랑하려 든다. 공(功)은 가져가고, 과(過)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이른바 신당 창당의 무리수는 시작됐다.
자기 비판에 충실했더라면 명분 없는 신당 창당 구상은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명분이 없는 까닭은 신당 창당 세력의 두 가지 노림수 때문이다.
새 정당을 만들어 DJ 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 첫번째다. 두번째는 지지도가 떨어진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낙마시키겠다는 일각의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짓이다.
간판을 바꿔 달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끌어들여 덧씌운다고 해서 그 신당을 민주당과 별개인 새로운 당으로 인식할 국민은 과연 몇일까.
특히 200만명의 경선 참가 신청자의 참여 속에 7만여 명의 선거인단이 뽑은 ‘국민경선’ 후보를 물리적으로 배척할 수 있을까.
설령 이러한 일들이 당내에선 가능하다 해도, 많은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민주당은 자각해야 한다.
민주당으로서도 이는 ‘자기부정(自己否定)’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온 ‘민주세력’이 주류를 이루는 민주당이 결과보다 절차를 더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룰을 팽개치는 꼴이기 때문이다.
노 후보가 천정부지의 지지율을 기록할 당시 ‘노풍’은 노 후보 개인의 캐릭터 결과만은 아니었다. 정치권에 새 바람을 몰고 온 ‘국민경선제’가 ‘노풍’의 실질적인 진원지였다.
국민들은 이러한 정치 시스템이 낙후한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확신해 인기 ‘주말드라마’와도 같은 전국 국민경선에 많은 성원을 보냈다.
제주도에 ‘한국의 뉴햄프셔주’라는 닉네임을 달아주고 전국을 달군 국민경선제의 도입은 5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민주당 본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신을 부정해 국민이 바라던 ‘희망의 정치’를 접으려 한다. 그리고 새 천년이 아니라 묵은 천년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명분 없이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제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임을 모른 채.
대개 직장인은 매일 아침 출근 준비로 거울 앞에 선다.
아침의 심정으로 민주당은 국민의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 속에 민주당의 살 길이 있고 희망이 들어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