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미술대전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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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등용문. 올해로 28회째를 맞은 ‘제주도미술대전’(이하 도전)의 모토다.
1975년 11월 제주신문사(현 제주일보)가 ‘제주도미술전람회’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래 도전은 30년 가까운 연륜을 쌓아오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일반부와 학생부로 나뉘어 탄생한 도전은 당시 박토(薄土)의 식물처럼 빈약한 제주미술의 중흥을 기약하며 의욕적으로 기획된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제1회 대회에는 5개 부문에 걸쳐 294점이 응모, 첫해부터 왕성한 창작의욕을 보여줬다. 서세옥씨(당시 국전 심사위원) 등 국내 화단의 중진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참가해 도전의 얼굴을 빛냈고, 첫 전람회에 연인원 1만9000여 명의 관람객이 줄을 이어 미술에 대한 도민들의 높은 관심을 유도했다.
1983년 9회 때부터는 ‘제주도미술대전’으로 이름을 바꾸고 뜨거운 예술의 장으로 역량있는 신인들을 배출했다.
도전은 1989년부터 주관단체가 예총 제주도지회로 이관돼 현재에 이르는데 도민들에게는 한 해 제주미술의 결산을, 신인작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총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도전을 통해 발굴된 신인작가들은 현재 제주미술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진정한 화단의 발전이 지역성 확보에 있다면 도전이 제주화단에 끼친 영향은 이처럼 크다.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도전은 최근 제주미술계 안팎으로 변화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10년 넘도록 거론되고 있는 것이 우선 부문별 분리 개최와 그에 따른 주관권의 관련단체 이양 문제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50%가 넘는 입상률에 따른 질적 위상 제고, 심사 등 운영방식 개선 등이 보태졌다.
도전이 치러지는 동안 도내 미술계 내부적 갈등이 표면화하면서 파행 운영으로 치달았던 때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1990년 16회 도전에서는 제주대 미술학과 학생들의 출품 거부와 미술인 간 불신으로 제주미술이 위기상황까지 내몰렸다. 당시 심사에서 한국화는 접수된 8점 중 6점이, 서양화는 14점 중 9점이, 조각은 6점 중 5점이 입상하는 등 도전 사상 초유의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각종 공모전에 대한 개선책 요구는 비단 도전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미술협회의 대한민국미술대전 비리사건이 있다. 지난해 5월 미술대전 심사 비리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조사에 의해 미협 사무국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집행되고 미협 전.현직 이사장과 간부들을 포함한 25명이 입상을 미끼로 금품을 받아 무더기 입건됐다.
미협은 비상 임원회의를 서둘러 열고 자정을 결의하는 한편 미술대전 개혁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심사방식 개선과 관련해서는 명망있는 외부 인사와 각 분과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미술대전 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 점수제 도입, 점수 집계 전산화, 심사위원 채점표 공개, 참관인에 심사과정 개방, 담합 방지를 위한 심사위원 증원 등으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로 했다.
현재 도전 운영위원회가 새겨듣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내용들이다.
나아가 심사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작품 비교를 위해 입상작은 물론 본인이 원할 경우 낙선작도 인터넷에 전시키로 한 것은 작금 공모전의 현실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증거다.
제주도미술대전의 위상 정립을 위해서 도전 운영위원회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운영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도전 운영위원회가 오는 10월 도전 평가회를 갖고 개선책을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그나마 도전은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젊은 화가들이 열망하는 권위있는 제주지역 최고의 공모전이 아닌가. 20여 년의 연륜에 쌓인 무게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뢰받는 도전이 될 수 있도록 미술인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주관단체의 협의와 지혜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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