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속인 마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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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00년 7월 중국과의 ‘마늘 협상’에서 2003년 이후에는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조치를 추가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해 놓고도 이를 숨겼던 사실이 최근 밝혀져 농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긴급 수입제한조치란 특정 물품의 수입이 급증함으로써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줄 우려가 있을 때 수입물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물량을 제한하는 조치다.
그런데 정부가 마늘 협상 이후 ‘수입제한조치 추가 연장이 안된다’는 사실을 쉬쉬하고 은닉함으로써 우리 농민들은 이러한 대비책을 마련할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
마늘재배 농가의 경쟁력 확보를 독려하고 챙겨줘야 할 정부가 오히려 농민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꼴이 되고만 것이다.
사실 세이프가드 조치 이후 국내 마늘산업의 경쟁력은 급속하게 높아지는 추세를 보여왔다.
마늘재배 면적이 2년 사이에 26% 감소했고 재배농가도 14% 줄었다.
종구갱신과 재배방법 개선 등을 통해 그동안 생산비도 4.2%나 줄였다.
그래서 농협은 경쟁력을 갖추는 데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최근 무역위원회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4년간 연장해 주도록 건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중국마늘이 국내로 무제한 들어올 경우 국내산 마늘 판매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농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은 뻔한 이치다.
한국으로 수출되는 중국산 깐마늘의 지난해 수출단가는 ㎏당 0.6달러(미 달러)였다.
여기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돼 국내 시장에서 2914원에 판매된다.
이 정도는 국내산 깐마늘의 정상가격인 2943원과 비슷하다.
그런데 내년부터 중국마늘의 수입이 자유화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수출단가가 대폭 내려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00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마늘의 단가를 ㎏당 0.34달러로 책정하면서도 한국에 수출되는 마늘에 대해서는 0.31달러를 적용했다.
그러나 2000년 ‘마늘 분쟁’이 발생하자 중국은 지난해부터 한국으로 선적되는 마늘의 수출단가를 0.6달러로 93.5%나 올렸다.
물론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마늘에 대해서는 종전과 비슷한 0.37달러를 적용했다.
“어차피 2002년까지는 한국시장 점령이 어렵고 그럴 바에는 수출단가를 높여 MMA(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최소 시장접근 물량) 물량으로라도 타격을 입히자”라는 의도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이런 전후 사정을 살펴볼 때 내년부터 30%의 헐한 관세가 부과되고 수출단가도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시 조정될 경우 중국마늘의 국내판매 가격은 국산마늘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제주지역의 연간 마늘 조수입은 600억~700억원대에 이른다.
전국 마늘 조수입의 7~8%를 차지하며 도내 농업소득 중에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감귤과 감자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했다.
당장 도내 농민들은 다음달 중순 이후 파종할 내년산 마늘 종자로 130억원어치에 달하는 물량을 확보해 두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나 제주지역 입장에서 보나 마늘은 외교무대에서 하찮게 취급 당할 그런 품목이 절대 아니다.
정부는 농민을 속인 ‘마늘외교’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파문이 일자 내년 이후 중국산 마늘 수입으로 국내 가격이 폭락하면 최저가로 수매해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마늘협상 내용 은닉사례는 국민과 정부 사이의 기본적인 믿음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정부는 멍들고 상처나고 시름에 젖은 농심을 달래야 할 의무가 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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