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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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우리 국민은 꿈 같은 한 달을 보냈다. 연인원 2000만명 이상의 인파가 길거리 응원에 나섰다고 한다. 무엇이 운동장에 관중들을 가득 메우고 길거리로 불러모았을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모두가 하나같이 붉은 옷을 입고, 똑같은 구호와 율동으로 열광했을까.
그동안 우리 프로축구 경기장은 언제나 비어 있었고, 특히 여성들은 축구경기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기에 이번 월드컵에서 온 국민의 폭발적인 응원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우리 대표팀이 48년 만에 첫 승리를 거두어 16강에 진출하고, 파죽지세를 몰아 8강을 넘어 월드컵 4위라는 신화적인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한 달 동안의 열광에는 신화적인 성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동안 우리에겐 우리의 꿈을 실현해 주리라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 정치권에서 연일 터지는 여러 추문들은 국민들을 정치에 질리게 했고, 최악의 취업난은 젊은이들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시.도지사도, 시.도의원도 기댈 언덕은 아니었다.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규정하는 요소들이 높이 평가받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자기 모교, 자기 회사, 자기 지역, 자기 나라 팀이나 선수가 이기면, 자신이 강한 팀이나 선수의 팬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순간의 우월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한 달 동안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를 열광적으로 외쳤던 이유는 바로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수많은 꿈들을 월드컵에 담으려 했던 것이다.
우리는 월드컵 4위에 오름으로써 세계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벽을 잠시나마 허물어 하나라는 일체감을 맛보았다. 무엇보다도 이번 대회는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었고, 정체성과 연대감을 부여해 주었다. 그러나 월드컵 축구에서 4강에 올랐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세계 4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그러나 축구는 이번에 우리가 경험했듯이 축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 스포츠에 대한 열기는 사회 통합을 이루는 보약이 될 수도 있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마약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에 열광하다 보면, 중요한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골치 아픈 어려운 문제들은 외면하고 싶어진다. 6.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것도 어찌 보면 월드컵 열기의 탓이 크다.
어려운 사회 현실을 잊기 위해 스포츠에 눈을 돌리더라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남게 된다. 이제 뜨거웠던 열기를 식히고 평상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월드컵 기간 눈감고 미뤄 두었던 여러 난제들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월드컵 기간 느꼈던 일체감과 연대감을 그동안 소외되었던 집단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지역과 계층 간 진정한 통합을 이루는 쪽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히딩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 즉 기초를 튼튼히 하고 실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히딩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학연도 지연도 없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괸당, 친목, 지연, 학연으로 둘러싸인 우리 사회가 히딩크식 인재 등용을 하려면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그러기에 히딩크식 인재 등용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출범한 3기 지방자치 지도자들께서는 최대한 노력이라도 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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