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와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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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마늘협상 파문에서 보듯이 우리의 통상협상력이 절망적이다. 현 정권 출범 때 이 역량을 높인다면서 장관급을 장(長)으로 하는 통상교섭본부까지 설치했지만 겉만 번드르르 했을 뿐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초래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같은 현실은 협상대표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협상대표의 잦은 교체, 고위직.외교직 중심의 의전형 협상단, 사전조사 부재의 결과다. 협상대표가 평균 10개월만에 교체되는 등 상하없이 인사가 잦았다. 전문성은커녕 협상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인 것이다. 2000년 마늘협상 대표는 협상 전에 요르단 대사로 발령났고, 실무를 맡은 아태통상과에는 과장을 포함한 6명의 직원 중 현재 이 과(課)에 남아 있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마늘협상 못지 않게 비난의 대상이 됐던 ‘쌍끌이 어업협상’도 전문성과 외교력 부재의 전형적 사례였다. 그 때도 책임자 인사조치와 함께 집중감사, 기능 확대를 한다고 했지만 역시 여론 무마용에 불과했다.
어업협상은 해양수산부, 유럽연합(EU)과의 조선협상은 산업자원부, 대외경제 조정은 재정경제부 등으로 대외교섭 주체가 제멋대로인 데다가 통상교섭본부는 부처간 업무조정이나 정책 입안을 할 권한과 능력이 없다. 게다가 잦은 순환인사로 전문성마저 상실했으니 통상문제에 신속하게 대처하기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모순투성이 인사정책, 사명감 결여, 정무직 진출에나 관심을 쏟는 이름뿐인 통상전문가, 업무 인수인계 소홀 등 통상협상의 무능과 무지는 구조적인 것이다. 이에 따라 정확한 진실 규명과 함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마늘협상 당시 정책결정 라인에 있었던 관계부처 장관 및 청와대의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 말도 크게 엇갈리면서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정부의 국정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마늘협상 문제가 불거지자 통상교섭 부처인 외교통상부와 주무부처인 농림부 간에 한 차례 ‘네탓 공방’을 벌이더니 이제는 청와대내 부서간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협상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농림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방침을 정했고, 협상 타결 후 결과를 각 부처에 즉각 통보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농림부 장관은 “협상 종료 후 합의문 요약서를 팩스로 받아 공람 서명은 했지만, 2003년 이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연장이 안된다는 사실은 외교부의 어느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개별업무는 관련수석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게 돼 있어 몰랐다”고 했고, 경제수석은 “협상의 보고 라인에 있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외교안보수석실은 “통상문제는 경제수석실이 보고해야 하는 사항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대 국사가 청와대 내 부서간 ‘미루기’로 인해 대통령에게는 제대로 보고조차 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책임지는 사람은 적고 책임없다는 자들만 줄을 서니 어느 나라 공직사회의 윤리의식이 이 정도인가. 이러고도 이 정부의 국정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국민으로선 분노가 가득할 뿐이다.
통상협상력 제고는 국익과 직결된다. 과오에 따른 질타는 맵게 하더라도 독자적인 인사.예산권 없이 의례적 대외창구 역할이나 하는 통상교섭본부를 이대로 둬선 안된다. 국익과 산업경쟁력 확보의 전위조직으로서 통상교섭본부가 기능할 수 있는 조직.인원.권한 확대 등을 재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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