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성과 다양성에 주목해야"
"개방성과 다양성에 주목해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1>천년제국 로마 리더십
▲ 양병무 인간개발연구원장.

“로마제국의 성공요인 가운데 핵심이 개방성과 다양성, 포용성이다. 제주 역시 많은 장점을 살려 국제자유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개방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병무 인간개발연구원장은 지난 13일 제주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09 제주글로벌아카데미 첫 강연에서 개방성에 바탕을 둔 ‘열린 사고’와 ‘사회적 시스템’을 강조했다.

이날 ‘천년제국 로마의 리더십’을 주제로 한 첫 강연에는 300여 명의 도민들이 경청해 성황을 이뤘다. 다음은 강의 요지.

1200년의 역사를 가진 로마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많다. 반도국가와 사람이 유일한 자원, 세계화 전략만이 생존의 길이라는 점 등이 그것이다.

섬 지역인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제주도를 세계화해서 육지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도록 해야 한다.

▲로마제국의 개관

로마제국은 기원전 753년에 세워져 서기 476년에 망해 12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정치에 따라 로마의 천년 제국을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로물루스 등 7명의 왕이 다스리던 왕정시대가 있다. 왕은 세습되는 게 아니라 민회로 선발해 죽을 때까지 왕의 직위를 주는 것이다.

다음이 공화정 시대다. 기원전 509년부터 시작해 서기 30년까지 5000년간 지속된 공화정 시대에는 한차례 집정관이라는 지도자를 선발했다. 이 시기에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의 패권국가로 거듭난다.

강대국으로 거듭나 제국 외부에 적이 없다보니 내부 분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때 등장한 카이사르(시저)는 황제 체제를 만들고 귀족들의 여러가지 권한을 박탈하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500년간 제정시대가 이어지게 된다. 카이사르는 암살을 당하고 이어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등극한다.

▲로마제국의 성공요인-유연성

로마는 굉장히 유연성이 강한 나라였다. 실패를 용인하는 정치적 유연성과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경제적 유연성,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는 문화적 유연성 등은 개방성과 다양성, 포용성이라는 로마제국의 성공요인을 만들었다.

로마는 다른 나라를 복속시켜도 그 나라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데 인식하지 않았다. 20년동안 군 복무를 하면 시민권을 줄 정도로 개방된 사회였다.

즉, 패배자도 로마인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식민지 주민들을 흡수해 로마 일원으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실제 영국인들은 과거 자신들이 로마 식민지였다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전쟁에 나가서 패배하면 장수를 처형하는 게 당시의 관례였다. 하지만 로마는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경제적 유연성도 놀라울 수준이었다. 경제논리가 정치논리가 우선이었다. ‘정치는 몰라도 경제를 몰라선 안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로마가 흥할 때는 경제논리가 통했고 반대로 로마가 패할 때는 정치논리가 횡행했다.

문화적 유연성도 마찬가지다.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했다. 그리스를 점령하면서 그리스 언어와 문하를 존중했고 노예도 스승으로 맞이할 정도로 개방적인 사회였다.

이처럼 개방성과 다양성, 포용성은 1000년 제국 로마가 세계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 역시 강점이 많은데 로마의 ‘개방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지난 13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주최, 제주일보사와 KCTV제주방송 주관으로 제주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09 제주글로벌아카데미 첫 강연에 참석한 도민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로마제국의 성공요인-시스템과 노블리스 오블리주

천년 제국을 뒷받침한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체계적인 법과 제도 정비를 통해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권력구조에서는 집정관과 이를 견제하는 원로원, 민회가 있었다. 특히 법에 의한 사회질서 유지를 강조해 성문법 제도를 활성화시켰고 변호사 제도 등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가 높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가도’는 유명한 부분이다. 로마가도는 15만km에 걸쳐 만들어져 우리나라 고속도로 3000km보다 더 길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벽’이라면 로마가도는 유럽 전 지역에 걸쳐 식량과 문자, 사람, 정보, 지식 등을 실어나른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로마는 매뉴얼로 움직이는 나라로 부를 정도로 방대한 부문에 걸친 기록이 많다. 군대의 이동인 행군만 보더라도 평상시에는 5시간에 25km, 강행군인 경우 7시간에 35km라고 규정할 정도로 매뉴얼이 철저하다. 이 모든 게 바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또다른 로마의 성공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귀족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즉 직위에 따른 책임감을 들 수 있다. 로마의 귀족들은 전투에서 얼마나 다치고 숨졌는가에 따라 시민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자신의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마인 이야기’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지성에서는 그리스인, 체력에서는 켈트족과 게르만족,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못한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개방성과 제도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제주도 역시 여기에 답이 있다고 본다. 개방성이 있어야 하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 지도자의 리더십

로마제국을 창업하고 수성한 지도자로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꼽을 수 있다. 카이사르는 제국의 청사진을 설계해 기반을 닦았고 아우구스투스는 초대황제로서 제국을 구축했다.

우리나라 ‘주몽(고구려 시조)’성격도 비슷하고 동시대 사람인 카이사르의 리더십은 ‘개방’과 ‘관용’정신에 있다. 현지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 개방주의와 관용(클레멘티아)을 정치 이념으로 설정, 살생부를 소각하고 반대파를 포용했다. 그는 “분노와 복수는 상대를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카이사르는 또 능력있는 노예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능력주의 인사관리를 실시하고 부하의 이름과 공적을 기록해 철저히 보상하는 한편 후계자 육성을 통해 국가 운영의 커다란 밑그림을 그렸다.

그가 말한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부르투스, 너마저…’라는 말은 우리 인생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명언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이에반해 아우구스투스의 리더십은 철저한 목표관리와 시스템 구축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한 마스터플랜과 실천전략을 수립해 점진적,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하면서 목표를 달성했다.

또 50만명의 군인을 17만명으로 감축하는 군사제도 개편과 국세 조사, 원로원 구조조정 등을 통해 제국 통치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내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 자제력의 대가 답게 ‘말없는 개혁’을 추진하고 가족이나 친척에게 엄격한 법을 적용하는 등 투철한 책임감으로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로마제국 멸망 원인과 시사점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으로는 지도자층의 자질 저하로 시스템이 붕괴된 데 있다. 카라칼라 황제의 인기영합주의와 지도자층의 기득권, 정치논리 등으로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경제력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야만족의 침입 격화와 지식인 계급의 지적능력 감퇴, 기독교 대두 등도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로마제국의 흥망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개방성과 다양성, 포용성 등을 갖춘 글로벌 마인드가 중요하다. 또 법과 제도가 움직이는 시스템 사회,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 지도자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역사로부터 배우는 지혜를 명심해야 한다.<정리=김태형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