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 맛을 함께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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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오래 걷고 나서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한잔은 으뜸이다. 그런가하면 궂은 날이나 추운 날에 데워 마시는 막걸리 또한 별미다. 그런 막걸리에 내가 즐기는 안주는 김치전이다. 바삭바삭하게 부친 김치전이야말로 안성맞춤이다. 모든 전(煎) 종류가 술안주로 적합하지만 예전에는 계절마다 특히 화전(花煎), 즉 꽃지짐을 즐겼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1611년 함열에서 유배생활 할 때 쓴 음식품평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당시 한양에서는 봄날 별미로 진달래꽃지짐인 두견화전(杜鵑花煎)과 배꽃지짐인 이화전(梨花煎)을 먹었고, 여름에는 장미전(薔薇煎)을 먹었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가을에는 자국회(煮菊會)라고 국화전을 먹는 모임까지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다양한 화전을 안주삼아 술 마시는 것을 전화음(煎花飮)이라 하였는데 이때 꽃과 술에 얽힌 스토리를 통해 인생의 이치를 나누었으니 옛 어른들의 술자리는 그 멋스러움이 대단했다.

 

몇 년 전,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갔는데 어쩌다보니 막걸리 순례가 되었다. 강원도에는 정말이지 여러 종류의 막걸리가 있었다. 옥수수나 밤막걸리도 맛이 있었지만 호박이나 메밀막걸리도 특이했다. 가는 곳마다 막걸리를 바꿔 마시면서 이런 저런 요리를 안주로 먹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의 술자리는 맛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전화음을 즐기던 옛 어른들과 같은 멋은 분명히 없었다. 그저 마시고 먹었을 뿐이었다.

 

언젠가 TV에서 대부분의 막걸리가 전통주가 아니라는 내용의 프로를 보았다. 막걸리 대부분이 일본식 주조방식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엔 없었다. 그렇다고 안 마실 수는 없어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애써 고르곤 한다. 집사람을 따라 마트를 가는 이유 중에 하나도 그런 막걸리를 고르는 재미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골라서 마셔보면 전통 주조방식의 막걸리는 맛이 없다. 우리네 입맛이 인공감미료나 화학첨가제 주조방식에 익숙해져선지 어딘지 밍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막걸리가 매력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구한 세월을 겪으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거기에 얽힌 독특한 스토리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보리누룩으로 새로 빚은 막걸리 한 동이에 그들먹하구나(麥麯新醅䲭)”라는 시구에서처럼 외로운 유배생활을 견디기 위해 보리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만약 우리가 전통의 보리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면 추사의 유배스토리도 함께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주에는 보리막걸리가 없다 보니 이런 스토리는 여간해서 만나기 힘들다.

 

포루투칼의 마데이라 와인이 세계 3대 주정강화주로 손꼽히는 이유는 나폴레옹 황제가 남아프리카의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마셨다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마데이라 와인을 마시면서 나폴레옹을 이야기하듯이 우리도 술을 마시면서 거기에 얽힌 이런 저런 스토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이 있겠는가. 게다가 그 자리에 제주유채꽃전, 제주참꽃전 등 여러 꽃으로 전을 지져 안주로 삼고 그 꽃에 얽힌 스토리까지 함께 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어떤 음식이든 맛과 멋을 동시에 갖추고자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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