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살은 국제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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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수,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논설위원

1947년 3월 1일 관덕정학살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제주학살은 국제적 사건이다. 미군정 평화 시기에 학살과 강제연행, 대량구속과 고문 등 각종 인권유린이 빈발했고, 이승만 정권시기에 학살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일본으로 도피했고, 제주인이 다수 거주하는 오사카 지역에서 처음으로 피학살자 추도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국제연합(UN) 조선임시위원단 감시아래 미군정에 의해 강행된 남한단독선거 실시를 반대·거부·기피해 4·3봉기가 일어나자마자 경찰과 군대가 총칼로 제주도민을 학살했던 건 처음부터 미합중국의 국가범죄요, 대한민국의 국가폭력이면서 국제적 사건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법, 특히 국제인권법은 더욱 발전했다. 전후 국제인권법은 국가에 의한 중대하고 반복적이며 체계적이고 조직적 인권침해를 금지하고 이를 관습국제법의 규범으로 발전시켜왔다.

말하자면 노예제도와 집단살해(제노사이드), 인종차별, 고문 등의 금지를 관습국제법상의 규범으로 확립했다. 이런 규범들은 어떤 국가가 제2차 대전을 전후해마련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약에 가입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국제공동체에 귀속하는 모든 국가들을 구속하여 이를 위반하는 경우 국제범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정의한다.

한 마디로 집단살해의 금지라는 규범은 이미 관습국제법을 구성한다. 마찬가지로 민간인 학살의 금지 의무는 다른 체약국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 대세적 의무(erga omnes)이며 국제공동체에 대한 의무이고 강행규범(jus cogens)이다.

예를 들면 제2차 대전 당시에 일어났던 히틀러의 망상에 의해 수백만 명의 유태인 대학살을 겪은 인류는 국제연합을 설립하며 이런 대비극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총회 결의를 통해 국제인권법에 앞서가는 관습국제법의 규범을 발전시켜왔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48년 12월 세계인권선언과 집단살해금지협약이었다. 그나마 미합중국은 이 집단살해금지협약 비준을 늦추고 유보선언을 함으로써 집단살해금지협약 위반의 틀 밖으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해서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거나 적대행위를 포기한 유격대와 자위대 참가자들을 자의적으로 처형하였다면 아무리 당시 군대와 경찰이 국내법의 논리에 따라 4·3봉기를 진압할 권리를 지녔다고 한다고 보더라도 국제인도법상의 가해책임을 모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1907년 헤이그육전규범의 마르텐스 조항(Martens Clause)은 전투상황에서도 민간인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 제 협약에 대한 추가 및 국제적인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제I의정서)는 ‘이 의정서 또는 다른 국제협정의 적용을 받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민간인 및 확립된 관습, 인도주의 원칙, 공공양심의 명령으로부터 연원하는 국제법원칙의 보호와 권한 아래에 놓인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제주학살의 피해자들은 미합중국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제인권법 위반 등을 사유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수많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형제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가해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피해자의 권리포기나 다름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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