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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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요즘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이 뜨겁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남북관계 소식만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며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누려온 사람들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투 운동은 다 알다시피 미국에서 시작됐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여배우 성추행 사실이 지난해 10월 보도를 통해 알려진 후 소셜 미디어에 ‘나도 당했다(Me Too)’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성추행과 성희롱 피해자들의 폭로 운동인 셈이다.

남의 일처럼 보이던 미투 운동이 한국에 상륙한 건 올해 초다. 서지현 검사가 몇 년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안태근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불이 당겨졌고 시인 고은, 연극 연출가 이윤택·오태석, 배우 조민기 등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이 나서면서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이제는 대학과 종교계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고구마 줄기를 잡아당긴 것처럼 줄줄이 터져 나올 조짐이다.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가해자들의 이중적 행동에 많은 사람이 실망과 분노를 표시하고, 오랫동안 그런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사회 시스템에 탄식을 쏟고 있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지위와 이름을 가진 어른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향력 밑에 있는 약자들을 농락했다. 심지어 어린 여학생들까지 술자리에 불러내 성적 노리갯감으로 삼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감지하고도 모른 척 눈을 감거나 방조한 사람들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드러내면서 많은 과제도 던진다. 무엇보다 이런 문제들이 모두 피해자들의 폭로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은 깊이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피해자를 감싸주면서 추악한 범죄를 단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범죄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제도적 장치다. 미투 운동도 궁극적으로 그런 데로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피해를 당했을 때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픈 상처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폭로라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사법처리를 통한 가해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성범죄에 대해 가혹하다. 가해자들이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숙인다고 쉽게 용서가 되는 게 아니다.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하고 감시의 눈길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게 피해자 보호다. 피해자 신분이 드러날 위험이 있을 땐 가해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약자들을 보호하는 건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다.

제도를 바로 세우려면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해 널리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학교나 직장에서 부적절한 성적 농담이나 성적인 제스처, 원하지 않는 성적 접근, 데이트를 하자고 계속 치근대는 행위 등도 모두 성희롱이나 추행에 해당된다고 인권법에 명시돼 있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서는 매력적이라는 말도 성적인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만큼 함부로 해선 안 된다. 비록 가해자가 그런 발언이나 행위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해도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인권법은 분명히 못 박고 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인권위원회는 비밀 상담도 하고 고발도 받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제도가 바로 서면 피해자가 용기를 내기도 한층 쉬워질 건 불문가지다.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추악한 범죄를 단죄하고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미투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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