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의 부활
당구의 부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함성중 논설위원
당구는 천을 깔아놓은 당구대에서 적색·백색 공을 큐로 쳐 점수를 겨루는 레저스포츠다. 기원전 400년 무렵 그리스에서 옥외스포츠로 당구의 원형(原型)이 실시됐다고 한다.

현대식 당구의 기원은 15세기 영국에서 성행하던 크리켓 경기를 실내경기로 변형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국에선 1915년 순종 때 창덕궁에 당구대 2대가 설치돼 왕과 대신들이 실내스포츠로 즐긴 것이 최초라 한다.

대한당구협회가 1955년 창설된 후 이듬해 서울에서 제1회 전국당구대회가 열린 바 있다. 1993년 헌법소원으로 ‘18세 미만의 당구장 출입금지’가 해제되기도 했다. 2011년 비로소 당구가 전국체전 종목이 되면서 정식 스포츠로 위상을 갖추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오늘날 3쿠션 종목에서 세계 당구를 주도하는 중심국가로 성장했다.

▲당구공은 오랫동안 상아로 만들었지만 요즘은 거의 플라스틱 재질이다. 지름은 61.5mm와 65.5mm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포켓게임엔 그보다 조금 작은 공이 사용된다.

큐는 단풍나무처럼 밀도가 높은 고급나무를 이용해 제작한다. 길이는 150㎝ 안팎, 무게는 420~595g이다. 그 끝에는 가죽으로 된 탭을 붙인다.

당구 게임은 일반적으로 4구와 스리쿠션을 즐겨 친다. 4구는 말 그대로 흰 공 2개와 빨간 공 2개를 사용해 경기를 치른다. 서로의 기량에 맞게 점수를 정한 뒤 번갈아 공을 쳐서 그 점수에 빨리 도달하는 사람(팀)이 승리한다.

스리쿠션은 흰 공 2개와 빨간 공 1개로 하는 게임이다. 자신의 공이 다른 2개의 표적공을 맞히기 전에 3회 이상 쿠션에 닿아야 한다.

▲은퇴 시기를 맞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당구장 부활의 주역으로 떠오른다고 한다. 1970~80년대 경제 성장기에 당구는 이들의 거의 유일한 오락이었다.

그 시절 향수를 더듬으며 당구장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1차 저녁식사 후 2차 ‘내기 당구’는 요즘의 트렌드다. 승부욕을 자극하면서도 게임비가 저렴하고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것도 매력 요인이다.

그래선가 당구장은 근래 ‘뜨는 업종’이 됐다. 2014년 1만4629군데에서 2017년엔 1만8258군데로 3년 만에 25%나 증가했다. 법 개정으로 작년 말부터 당구장이 금연구역에 포함돼 ‘너구리굴’이란 오명도 벗었다.

당구는 간단해 보이지만 1시간에 2~3㎞를 걷는 효과를 내는 유산소 운동이다. 거기에다 집중력을 키워주는 효과도 있다. 중년 이상 시니어들이 특히 참고할 일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