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여성 문맹 퇴치와 계몽·교양 교육 통해 여권 신장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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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강평국 추도비-강태선, 조선 무력 독립 봉기 등 추진…‘일본 동화 정책’ 결사 반대
강평국, 절친 최정숙과 여수원 개설…유학생 중심 비밀 결사 조직

▲강태선姜太善:1924(일제강점기)~?,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항일활동. 본관은 진주, 강경환姜京煥의 아들, 성산면 시흥리<힘돌>에서 태어났다.


1941년 3월 오사카 포시시布施市 소판小坂심상고등소학교 고등과 2년을 졸업, 조국이 광복이 되면서 감옥에서 풀려나 귀향하였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진학 공부를 하던 중 그에 따라 민족의식이 점차 첨예화되었다.


1942년 8월 마침내 독립 운동의 추진을 결심하고 먼저 조원호曺源鎬(경북 칠곡)·심종보沈宗輔(경남 마산) 등에게 일본의 패전은 시간문제라면서 징병제 실시는 조선의 독립된 후에도 동화 정책은 결사적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독립 봉기는 결국 조선 민족의 무력에 의해야 한다고 믿었다.


항일 활동으로 1943년 일경에 체포되고 1944년 8월 25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 2월형. 정부에서는 1982년 독립 유공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본인에게 전수하였다.


▲강평국姜平國(여):1900(광무4)~1933(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근우회槿友會의 항일 활동.


본관은 진주, 원적은 애월면 광령리<광낭-왓>. 강두훈姜斗勳의 3녀로 제주시 일도리<제주-성내>에서 태어나 교육자 강세독姜世篤의 누이.


강세독은 1911년 제주공립보통학교 4년을 제1회로 졸업하고 관비 유학생으로 1916년 경성고보京城高普와 동교 부설 사범과를 졸업, 동년 대정공보교, 또 제주공보교 교사로, 1923년 표선면 성읍리에 개설된 정의공립보통학교 교장 사무취급이 되었다.

 

후일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학東洋大學을 졸업, 또 도내외의 초등교육에 몸 바쳐 정년퇴임한 분이다.


그녀의 부모는 1901년 신축辛丑 천주교란天主敎難 당시 순교, 어머니의 세례명은 유리안나였고 당시 강평국은 2세, 강세독은 10세, 모두 고아가 되자 천주교에서 이들을 키워 강평국은 본도 여성으로서 최초·최고의 학력을 갖추었다.

 

▲ 강평국姜平國(사진 맨 왼쪽)과 최정숙(맨 오른쪽).

강평국은 1910년 신성晨星여학교에 입학하고 1915년 3월에 제1회로 졸업, 당시 동기생 최정숙崔貞淑과 가장 절친한 사이였다.


1919년 3월 만세 운동에 참여, 경성京城여고보(현 경기여고) 사범과를 졸업, 전남 진도珍島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한편 유지들이 1920년 제주여자장학회를 조직하여 여학교 설립을 추진할 때 그녀는 이를 모태로 여자 50명을 모집, 1921년 동지 최정숙과 함께 여수원女修園을 개설하였다. 이는 여성에 대한 문맹文盲퇴치와 초등교육 및 계몽·교양을 통하여 여권을 신장하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하는 희생적인 봉사 활동이었다.


동년 본도의 진보적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역자구락부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할 때 창립 멤버로 활동하였다.

 

1922년에 여수원은 사립 명신학교明新學校와 통합하여 남녀 공학 사립 초등학교로서의 출발을 할 때 최정숙과 함께 명신학교 교사가 되어 김응두金應斗, 오유일吳有一, 송택훈宋澤壎, 한상호韓相鎬, 김택수金澤銖, 박교훈朴喬薰 등과 같이 근무하였다.


이 학교는 결국 1924년 제주공립보통학교(현 제북교)에 흡수 통합되었다. 1925년 제주 여성의 지위를 높이기 위하여 강평국은 최정숙, 김시숙金時淑, 이재량李載良 등과 함께 제주여자청년회를 조직하여 새로운 여성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녀는 천주교의 독실한 신자로서 의술을 통한 봉사의 중요성을 인식,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東京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니 이는 본도 여성으로서 고등 교육기관에 유학한 제1호가 된다.


1927년 1월 16일 창립된 조선여자청년동맹 초대 집행 위원장이 되어 두 가지 일을 추진하였다.

 

첫째는, 1927년 3월 ‘재일본 동경동부 조선 노동조합 정기총회’에서 임원 개선 시에 강평국은 유일한 여성으로서 집행 위원회 부인부婦人部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 총회에서 결의하길 먼저 민족적 단일당單一黨을 결성하여 철저히 저항하고 이론 투쟁에서 정치적 폭로를 거듭하자는 것과 파벌주의 잔재를 근절하자는 것이었다.

 

▲ 강평국 초상 <그림=김남홍>

둘째는, 1928년 1월 22일 근우회槿友會 도쿄지회가 일본에서 최초의 지회로 결성을 보게 되었다. 이때 당선된 대회의 의장단은 강평국, 박화성朴花城(목포, 소설가)이다. 이 민족단일 여성 단체가 태동하는 데는 강평국 등 신간회新幹會 계열의 여성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당시 회원이 140여 명이었다. 이때에도 정치문화부 간부인 강평국의 주도로 도재희都在姬(경북 성주), 조영기趙英基(경북 영양)의 지도가 주효하였다.


동경여의전東京女醫專 3학년 재학 중 늑막염으로 몸이 극히 쇠약해 귀향, 이런 일로 병이 극히 악화되어 1933년 11월 10일 병몰, 황사평 천주교 묘역에 안장되었다.


앞서 전라남도 일대의 여자청년회를 탄압할 목적으로 신여성 운동가들을 검거하는 데 혈안이 되었었다. 1933년 제주서濟州署에서는 강평국 여사를 광주로 구인했다.


1981년 11월 10일 고인의 업적을 기리어 동창 고순선高順善, 벗 한여택韓麗澤과 문하생 김서옥金瑞玉(초등 교장) 등 13명의 여성들에 의해서 ‘독립투사 강평국선생 추도비’를 건립.


▲강필리姜必履:1713(숙종39)~1767(영조43), 문신. 일본에서의 고구마의 전래로 그 재배법 보급에 크게 기여한 선비. 자는 석여石汝, 호는 경독자耕讀子 혹은 독립정獨立亭, 본관은 진주, 전라남도 강진에서 강선姜繕의 아들로 태어났다.

 

1747년(영조23) 문과 정시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762년(영조38) 지평으로 사도세자를 옹호하다가 사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도당록都堂錄에 뽑혔다.

 

앞서 홍문관 교리로 남양어사南陽御史·강화순심어사江華巡審御史로 나가는 등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 1960년대 말 전분공장에서 사용할 고구마를 수매하는 현장의 모습. 당시 전분공장에서는 직접 공장이나 고구마 생산지 주변 지역에 수매하는 장소를 정해 직접 생산자들로부터 고구마를 수매했다. 당시 고구마는 농가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제주사람들은 이 고구마를 감저(甘藷)라 불렀다. 따라서 고구마 전분공장을 감저 전분공장이라 했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刊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호조참의를 거쳐 1764년에 동래부사로 갔다가 대마도에서 가져온 고구마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심고 가꾸는 법을 연구 지도하여 그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1767년 승정원 동부승지에 이어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감저보甘藷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의 재배법·이용법을 저술하였으며 저작 연대는 1766년(영조42)으로 고증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완전히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고 다만 필사본 ‘감저종식법甘藷種植法’의 내용에 일부 소개된다.


필자가 살피건대 역시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전래해 온 조엄趙曮(1719~1777)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또 전라도 강진 태생인데 강진은 제주도와 육로를 거치는 길목이어서 고구마 재배와 연구를 하는데 적지이다. 비록 여타의 기록에 제주와의 관계는 기록이 없으나 제주와의 관계를 조엄의 경우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필자의 변): 강필리는 영조 17년(1741) 생원生員이 되어 영조 39년(1763) 조엄趙曮이 대마도對馬島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동래와, 제주에 심게 하였는데 이듬해 동래부사東萊府使가 되어 고구마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심고 가꾸는 법을 연구, 지도하여 그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묘墓는 시흥군 동면 신림리 난곡(현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다가 도시화都市化로 1972년 시흥시 정왕동으로 이장移葬된 후 시흥공단 토취장에 편입되어 1989년 3월 16일 화성군 남양면 북양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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