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도 외로움 담당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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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초빙교수/논설위원

서울 생활에서 매우 낯선 풍경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다. 이른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의 표정은 달랑거리는 폐지가 무색하게 무거워 보인다. 이 특별한 도시에서 어떻게 저토록 많은 노인들이 한결같이 ‘말하자면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걸까. 그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하루 평균 5000원, 한 달에 10~20만원이라니, ‘사는 게 뭔가’ 싶은 비애가 느껴진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그 광경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제주도로 가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제주에서는 팔순 할머니들도 밀감 따는 과수원에 귀한 일손으로 초대받지 않는가.

 

하지만 제주의 노인들, 말하자면 99세, 97세, 95세 할머니들의 독거 모습은 자못 비장하다. 이분들이 혼자서 생활하는 광경을 보면서 함께 방문한 권사님이 ‘기적’이라고 감탄한다. ‘어쩌면 이렇게 연노하신 분들이 혼자 사실 수가 있느냐’는 외침 또한 육지에서 이주해 온 그녀의 의문사다. 그때마다 ‘제주도에서는 오몽(움직임)을 할 수 있는 한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사는 게 전통’이라는 나의 답변이 자꾸만 기어든다. 발갛게 얼어붙은 얼굴로 보일러는 아껴놓고 전기장판에 웅크리신 할머니의 조냥(절약)이 낯설어서 권사님은 자꾸만 겨울날씨를 타박한다. ‘어젠 물질 허는디 전북이영 해섬이영 잘도 하영 잡안 이. 니네들 주젠 막 지꺼정 외당 보난, 오꼬시 이 트멍이라(어제는 물질을 하는데 전복이랑 해삼이랑 아주 많이 잡았어. 너희들 주려고 아주 기뻐서 소리치다 보니, 그만 이 구석이야)’ 하면서 강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신다. 아들 부부가 있건만 구태여 혼자 사는 할머니도 겨울밤의 외로움은 견뎌내기 힘드신 게다. 영국의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에 의하면 외로움이 한겨울 추위와 결합하면 최악의 조합을 형성한다.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값이다.

 

2017년도 말 현재 제주도의 65세 이상 인구는 93,364명, 독거노인은 1만1000여명에 이른다. 둘 다 전국 평균을 웃도는 수치다. 혼자 사는 노인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제주도 할머니들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장수를 자랑하는 섬의 특성을 감안하면 특별한 사회문제다. 201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의 ‘100세 이상 고령자조사’에 의하면 제주도는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이 17.2명으로 전국 최고다. 2017년도 들어서는 이 수치가 38.5명으로 증가해, 통계상 99명이 꿈같은 100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가난하게 혼자 사는 노인들은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기’를 소원한다. 구순을 넘긴 할머니들은 대부분 ‘하늘님은 왜 나를 데려가지 않느냐’고 하소연이다. 그래도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날을 이야기할 때는 미소가 피어오른다. ‘죽어가는 노인은 불에 타는 도서관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죽음 앞에서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말할 수 있는 노인들의 인생담이야말로 그 사회의 역사적 기록이 아니겠는가. 강 할머니의 일생이 제주해녀사의 한 장에 다름 아니듯 말이다.

 

설 명절이 지나면 자살을 시도하는 독거노인이 급증한다. 하루 종일 TV에서는 귀향행렬과 가족행사들이 화면 가득 넘쳐나는데, ‘나는 왜 혼자인가’ 하는 외로움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탓이다. 이러한 외로움을 사회문제로 인식한 영국은 얼마 전에 체육 및 시민사회 장관에게 ‘외로움 담당’을 겸직시켰다. 75세 이상 인구의 절반이 혼자서 생활하는 사회 환경을 고려한 특별조치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74%는 자기 집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한단다. 이래저래 제주도야말로 외로움 담당관이 절실한 지역이다. 험난한 인생을 견뎌온 제주도 할머니들이 혼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위민정책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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