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자목련이 품고 있는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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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과 교수

연두색이 강력한 힘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여리고 부드러운 연둣빛이 유월의 초록을 잉태하고 있다. 연두는 절망의 빛을 희망의 빛, 죽음의 빛을 생명의 빛으로 변환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칙칙한 모습으로 호흡을 멈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가지에 연둣빛 기운이 돌고 있다. 꽃망울이 자태를 형성하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앙증맞아 마음이 편치 않다. 저것들이 눈보라에 어떻게 지탱할까?


매화는 접시꽃처럼 화려하지 않다. 이것은 천사의 나팔꽃처럼 자신의 매력을 표출하지도 않는다. 또한 매화와 달리 천사의 나팔꽃은 한 해에 수 차례에 걸쳐 피고 진다. 매화는 그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자신을 가꾼다.


매화는 접시꽃처럼 진하고 열정적인 꽃이 아니고, 차고 맑은 꽃이다. 매화는 도시의 세련된 여성의 의상보다는 시골풍의 순박한 여인의 치마ㆍ저고리를 떠올리게 한다. 매화는 화사한 불빛이 아니고, 창호지를 밝히는 등잔불 같은 꽃이다.


꽃망울이 터져 성숙한 꽃으로 변신할 때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화사한 꽃이 허공에 흩어질 때, 늠름한 잎이 한 장씩 떨어질 때의 느낌을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 이 때 나무는 어떤 마음일까?


올해도 어느 날부터 어김없이 자목련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자목련이 여린솜털을 덮고 꽃망울을 안고 있다. 눈 오는 날 자목련이 연둣빛 옷을 입고 꽃망울을 품고 있는 자태에 마음이 아린다.


이제 자목련도 밖을 향해 무한정 뻗어 나가는 공세적 삶으로 전환할 자세를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자목련도 수성적 삶과 공세적 삶의 균형을 음미하는 순간일 것 같다. 우리도 자목련의 생태를 더듬어 볼 때이다.


이런 균형 감각을 지킨 결과로 지난 해에도 뜰의 자목련은 어느 보석보다 고귀하고 찬란한 꽃을 인간을 향해, 지구를 향해 표현했다. 자목련꽃이 자연을 향해 살짝 미소짓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태는 매혹적인 보석, 자수정 보다도 더 가슴 설레게 한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듯이 땅속에는 다양한 광물, 지상에서는 수많은 식물, 또한 식물이 내포하고 있던 성분이 과학자의 손에 의해 재탄생한 조합물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보석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자목련꽃도 시트랄(citral), 유게놀(eugenol), 그리고 미네랄 등을 품고 자연을 장식하면서 살아 숨쉬는 보석이다. 어느 과학자가 자목련 꽃이 흩날리는 매혹적인보석, 보랏빛 향기를 합성할 수 있을까?


자목련꽃처럼 땅속에서는 자수정이라는 광물이 신비계를 꾸미고 있다. 자수정은 반도체의 근간이 되는 이산화규소에 불순물로 산화철 등이 내재함으로써 화려한 색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목련꽃처럼 매혹적인 자태로 바람과 함께 율동을 뽐낼 수는 없다.


화학자들은 미모사, 바이올렛, 라일락 등 수많은 꽃들을 이용하여 향수라는 액체 보석을 창작한다. 또한 이들은 달콤하고 고혹적인 향기를 합성한다. 추억이 호흡하는 합성향료 덕분에 다양한 향수들이 출시되고 있다. 조향사 가브리엘 겔랑은 향수, 미츠코와 샬리마라는 액체 보석을 창작할 때 어떤 고뇌를 했을까?


연두빛은 봄맞이를 위해 고개를 내미는 첫 마음의 색깔이다. 첫 마음은 싱그러움 속에 뜨거움을 잉태하고, 내일의 절정을 향한 간절함의 표상이다. 꽃눈을 내밀 때 자목련은 매력적인 꽃으로 활짝 피도록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우리도 첫 마음의 연둣빛을 품고 향기가 스며든 자수정 같은 보석을 생성하기 위해 일로매진할 때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자수정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초심, 열심, 종심(뒷심)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은 초심이다. 초심에서 열심이 나오고,초심을 유지하면 뒷심도 당연히 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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