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있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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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내 무릎 위에 고양이 한 마리 누워 있다. 가랑가랑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는 걸 보면 자리가 편한가 보다. 구름 속에 숨었던 햇살이 고양이 얼굴에 따습게 내린다. 외진 곳이라 손님이 뜸한 카페에 들어서자, 탁자 밑에 옹그리고 있던 고양이와 마주쳤다. 연갈색 털에 동색의 짙은 줄무늬를 가진, 귀티가 자르르 흘러 시선을 끌었다. 거기다 노르스름한 눈까지, 털과 조화로운 게 예사로운 고양이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종종 길고양이와 마주치는 일이 생기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당돌한 눈빛이, 음흉스럽고 앙큼해 보여 손을 휘저어 쫓아 보내곤 했었다. 첫인상이 준 호감 때문일까. 별 생각 없이 장난삼아 오라는 손짓을 했더니, 뜻밖에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의자 밑 발 위에서 몸을 비비적거리다, 탁자 위로 오르더니 함께 자리한 일행을 지나 내 앞으로 왔다. 영리한 동물답게 제게 관심을 두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앞발질을 한다. 저와 함께 놀아 달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러다 무릎으로 내려앉아 벌러덩 누워 배를 드러내며, 손을 당겨 잘근잘근 무는 시늉까지 한다. 경계를 풀어 자기편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인가 보다. 날카로운 이로 혹 물릴까 봐 솜털이 곧추섰지만, 호의라는 걸 알고는 그의 장난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오른손에 찻잔을 든 채, 왼손으로 고양이의 머리에서 등까지 길게 쓸어 주었다. 부드러운 털이 매끄럽게 눕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졸음 겨운 눈빛으로 주둥이를 옆구리에 묻고 아예 잠을 청한다. 마치 어미 품을 파고드는 새끼 같다. 넓은 공간에서 혼자 놀기에 무료했을 거고, 추운 날씨에 의지할 체온이 그리웠을 거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측은했다. 잠시라도 따뜻하게 품어 주고 싶어 가슴 쪽으로 당겨 안았다. 갓난아이를 안았던 느낌이 이러했을까. 모성애가 되살아 날 만큼 가슴이 뭉클했다. 훌쩍 자란 손자들 이후 품에서 잠재운 건 오랜만이다.

거기다 어린아이가 아닌 동물은 처음이다. 녀석은 아예 팔을 베개 삼아 네 다리를 죽 펴고 눕기까지 한다. 찻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면서. 작은 몸짓으로 배를 볼록거리는 고른 숨결이, 나에 대한 신뢰감으로 느껴졌다. 묵중한 체중으로 다리가 저렸지만, 행여 잠이 깰까 봐 다리를 움직이기가 조심스럽다.

외롭고 힘들 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온기가 절실히 그리울 때가 있다. 고양이도 그런 친구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외로움을 타는 것은 동물과 인간이 다를 수 없으리라. 고양이는 내 품에서 잠을 청했고, 나는 시렸던 무릎이 고양이로 인해 따뜻했다. 잠시 친구처럼 말이 필요 없는 체온으로 의지를 했던, 사람과 동물이 소통도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했다.

가정에서도 가족 간에 생긴 갈등의 틈을 메울 수 있는 것도 따듯한 품이다. 서로 보듬어 살갗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헛헛한 가슴을 울려, 미움조차 넘어 설 수 있는 묘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 고양이의 노란 잔털이 묻어 있는 무릎에 따스한 온기가 여전히 느껴진다. 곧 눈이라도 내릴 것 같다. 앙상한 나목의 숲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자문해 본다. 나는 진정 마음을 나누며 의지할 수 있는, 서로 든든한 버팀목 같은 친구가 곁에 있는지를. 이런 친구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헛되지 않을 것 같다. 올해는 여럿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단 한사람의 친구만이라도 자주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갖고 싶다.

눈이 오면 혼자 외로운 이 녀석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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