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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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정치부장
제주시 소속 비정규직 주차관리원 24명 중 2명은 여성이다. 둘 다 쉰두 살 동갑내기다. 지난해 6월 채용돼 동문시장 노상주차장에 첫 배치됐다.

차량 매연에 목이 쓰렸고, 여름 더위에 입술이 부르텄다. 화장실은 하루 3번 눈치껏 가야했다.

2000원 남짓한 주차요금을 내지 않고 도주하는 얌체 운전자로 인해 돈을 대신 물어야 하는 덤터기를 쓰기 않기 위해서다.

순환 근무에 따라 노형동 공영주차장에 근무했다가 올 겨울 다시 동문시장 주차장으로 복귀했다. 한파가 닥칠 때면 추위에 떨며 근무하고 있다.

여성 주차관리원들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주특별자치도의 정규직 전환 심사에서 제외돼 오는 4월 말이면 일자리를 잃게 됐다. 9개월 만에 계약이 종료됐다.

제주시 소속 주정차 단속원 28명은 정규직 전환 심사 명단에 올랐으나 막바지에 ‘단속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해 말 해고 통지를 받았다. 이들은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영위하기 어렵게 됐다며 최근 제주도청과 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울분을 성토했다.

재활용품 쓰레기를 수거하는 비정규직 환경미화원 57명도 실직 상태에 놓였다.

제주시는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을 6개월 단위로 계약해왔다. 최대 3차례를 연장해 18개월간 근무하면 6개월을 쉬었다가 다시 채용하는 방식을 이어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10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비정규직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로 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는 업무, 앞으로 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일자리는 모두 정규직화를 권고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12월 1643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연 9개월 이상, 향후 2년 이상 지속적으로 업무를 맡게 될 548명(33%)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들은 올해부터 평균 600만원의 연봉 인상과 명절 상여금 및 복지 포인트가 지급된다. 제주도는 이를 위해 복리후생 예산으로 35억원을 추가 편성했다.

정규직에서 탈락한 나머지 1095명의 비정규직들은 설움은 커지고 있다. 제주시는 28명의 주정차 단속원에 대해선 서류 전형과 면접을 보고 다시 채용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다른 이들에게도 면접 기회를 주면서 기존 단속원들이 채용된다는 보장은 없는 상태다.

이와 함께 주차관리원과 환경미화원에 대해서도 정규직 전환은 못해주는 대신 종전처럼 재계약 방식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재계약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편법이다. 담당 공무원들도 이를 알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제주시 한 공무원은 “인건비를 줄 예산이 넉넉하고, 공무직 정원이 많으면 누가 정규직을 되는 것을 막겠느냐”며 “정부의 방침을 따르다보니 결국 10년 넘게 일했던 비정규직들이 일자리마저 잃게 됐다”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예산상의 이유나 행정편의, 관리상의 이유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경계 상에서 애매하게 운영한 부분이 있다면 이 기회에 확실히 정규직으로 편입시켜 고용 안정화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처럼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정된 총액인건비에서 연봉 인상과 복지수당, 퇴직금 및 상여금 지급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담당 공무원은 호소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제주에선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태를 낳을 상황에 이르렀다. 준비 절차와 후속 조치 등 로드맵 없이 밀어붙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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