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기록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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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논설위원

근대적인 개인이 탄생하고 새로운 정치공동체로서 국민국가의 ‘시민’ 탄생은 근대 민주주의 발전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 사전적으로 보면 시민(citizen)은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을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만들어 주는 권리와 의무들의 집합체를 시민권(citizenship)이라고 정의한다. 시민권은 시민으로서 가지는 권리만이 아닌 시민이 되기 위한 덕목과 의무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시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근대 시민 및 시민권과는 차이가 있다.

근대 시민권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소유, 생명, 안전, 행동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포함한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시민(citoyen)은 공적 업무인 법률의 형성 및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을 의미한다. 그동안 시민권의 내용과 실행을 둘러싼 다양한 투쟁과 전환의 과정들이 있었는데, 그 장구한 투쟁의 역사에서 시민권은 정치, 교육, 경제 활동, 인권 등에 대한 권리 선언과 획득을 이루어왔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권리와 욕망이 문화와 기록에 참여하는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기록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권리 선언의 확대이다. 이제까지 기록은 문자를 지배하여왔던 지식인 혹은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 보통교육의 결과와 고등 교육의 확대는 기록을 지식인 혹은 지배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시민들이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권리로 확대 발전시키고 있다. 해외에서는 1980년대 지역 공동체를 지키자는 일환으로 나타났던 지역 공동체의 삶에 대한 시민 기록이 한국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역 공동체의 삶에 대한 기록은 전국에서 확산 중인데, 이런 현상은 급격한 지역사회 변화로 인한 지역공동체 변동과 장소성의 상실 등으로 인하여 나타나고 있다. 마을이 품고 있는 기억과 기록을 통하여 지역의 장소성과 지역성을 재발견하고 지역공동체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시민들의 권리이자 의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은 시민들이 꾸린 사회적 기업이다. 이 협동조합은 오늘날의 강원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시 용산에서는 해방촌 마을기록단이 운영되고 있으며, 제주에서도 소도리 네트워크 등 전국에서 수십 개의 시민 기록단이 운영되고 있다. 시민의 손으로 그들의 삶을 직접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한 자료 모음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체계성을 가지려 하기 때문에 기록과 관련된 교육들이 같이 병행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와 화성시, 대구시, 강원도 등, 전국 곳곳에서 마을기록학교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구술사 방법론을 비롯하여 기록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들이 수행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마을공동체 기록관리 매뉴얼도 발행하였다.

기록 방식이 종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 작업들은 곧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마을 기록전시관 등과 연동되어 운영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작업은 마을 기록 활동가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마을의 새로운 산업과 지역공동체 재건 사업 등으로 모색되어지고 있기도 하다. 나아가 시민이 기록하는 지역문화, 시민이 중심이 되는 기록 자치를 통하여 지역기록화 작업의 사회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급격한 사회 변화로 ‘제주다움’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제주 사회에서도 이 새로운 움직임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제 시민들이 기록하는 시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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