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영어영역에서 절대평가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수능 채점 결과 처음 절대평가로 전환된 영어영역의 1등급 비율은 전체 수능 응시자의 10.03%에 해당하는 약 5만 298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 대학 모집 인원이 약 7만여 명임을 감안하면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영어영역에서 1등급을 받아 응시하는 2018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영어는 거의 변별력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번 대학 입시에서 영어영역의 힘은 오히려 더 커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선 영어영역에서 10명 중 1명 이상의 학생들이 1등급을 받은 결과 영어영역에서 2등급과 3등급을 받은 학생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은 무척 힘들어졌다. 이미 끝난 수시모집에서는 각 대학이 정한 영어영역 최저학력기준을 충족시키는 학생들이 그만큼 많아서 학생들 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로 인해 수시에서는 대학별 논술과 면접 및 학생부 교과 성적이 당락을 결정한 중요한 변수였다.

수능에서 영어 1등급자가 늘어남에 따라 정시에서도 중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1월 9일에 마감된 정시모집 현황을 보면 상위권 학생들의 눈치작전이 극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능 영어영역에서 1등급을 받은 학생들은 정시에서는 동일한 영어 점수로 반영되기 때문에 국어영역과 수학영역 등의 점수 반영 비율과 가산점 여부가 합격을 결정하는 중요 지표가 된다. 대폭 늘어난 1등급의 영어영역 성적이 오히려 대학 입시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수능 영어영역에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당초 절대평가를 도입한 취지가 무색해져 버렸다. 2014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주최한 ‘수능 영어 과목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공개토론회’에서는 수능 영어영역의 난이도를 적절하게 유지할 경우 학생들의 영어 학습 부담은 경감되고 학교 영어 교육은 정상화되며 사교육은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나 수능 영어영역의 변별력이 약화됨으로써 적어도 상위권에서는 영어가 대학 입시에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대학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학생들을 뽑기 위한 자구책으로 영어 논술과 영어 심층 면접 등 또 다른 평가 방법을 입시에 반영할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

영어영역이 변별력을 잃음에 따라 대학 입시에서는 영어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들의 성적이 합격을 좌우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국어와 수학 과목의 비중이 커졌다. 그리하여 국어와 수학 과목에서 입시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사교육이 더 증가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영어 사교육비가 다른 과목의 사교육비로 전이되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처럼 2018학년도 수능 영어영역에서 난이도를 적절하게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대학 입시에 적지 않은 혼란을 주고 있다. 학교에서는 영어 수업이 소홀해질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혼란을 최대한 줄이고 학교 현장에서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 수업이 되도록 하기 위해 다음 수능에서는 절대평가 도입의 근본 취지에 맞게 영어영역의 난이도를 반드시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 과목의 변별력 약화로 다른 과목들의 성적이 대입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식의 불공정한 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영어 이외의 다른 과목들도 수능에서 절대평가를 할 것인지 여부, 대학이 입시에서 어느 정도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가져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통해 현 수능 체제를 바꿔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납득하는 공정성에 기반을 둔 수능과 대입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야말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