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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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천천히 서둘러라 (Festina lente).’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되지만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분명하다.

서두르되 모든 상황을 잘 따져보고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난 9일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북한은 이날 회담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밝힌 후 문재인 대통령이 화답하면서 신속히 이뤄진 후속 조치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면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이후 13년 만에 남한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는 것이다.

북한이 대표단 및 선수단을 파견한다면 평창올림픽은 한걸음 더 성공 개최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철저하게 북한의 의도대로 시작됐고 끝이 났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참가라는 선물 보따리를 내밀었지만 비핵화 문제는 아예 논의 자체를 배제했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말과 태도에서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회담 초반 “회담을 확 드러내 놓고 공개하는 게 어떻겠냐”며 통 큰 모습을 보였던 그는 회담이 끝날 무렵 비핵화 문제 언급에 “그만 합시다. 좋게 했는데 이거 마무리가 개운치 않게 됐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남북 고위급 회담을 바라보는 남북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남북 고위급 회담을 놓고 비판적 우려들도 나온다.

일본 언론들이 ‘북한이 남북대화를 주도하면서 한미일 공조를 와해하려는 술책’, ‘핵과 미사일을 완성시킬 시간을 벌려는 의도’라고 비판을 쏟아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도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국내외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 대가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요구하고 비핵화 문제는 거론조차 못하게 한다면 남북대화의 근본 목적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는 ‘천천히 서둘러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의 속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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