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내에게 큰소리를 냈다. 화를 낸 것은 아니다. 저 쪽에서 빈번해진 큰 소리에 잠시 소심하게 폭발한 것일 뿐. 아내는 “옆집 검둥이 강아지를 위해서는 먹다 남은 돼지비계를 그렇게 알뜰히 챙기면서도, 현관문 앞에 놓인 재활용품 비닐봉지 묶는 것은 생각지도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필자는 “그것 좀 누가 묶으면 어떠냐? 힘든 것도 아니고, 3초면 된다. 우리 애들도 할 수 있고……”라고 반발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하다.

속마음은 이럴 듯. ‘나는 이 추운 날씨에 15분이나 먼저 일어나 부엌일 하다가 자고 있는 당신 깨워 영양주스 가져다 바치고, 쌀 씻어 밥 앉히고, 국 덥히고, 애들 깨우러 왔다갔다 하고, 내다버릴 재활용품 비닐봉지까지 현관 앞에다 꺼내놓았더니, 웬 옆집 강아지에게만 살뜰하냐?’ 필자는 이렇다. ‘물론 깨워줘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같이 잔 이불 혼자 개고, 탁자 위의 아들놈 코푼 휴지 가져다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물론 막 아침 설거지까지 끝내고 돌아섰는데 웬 재활용품 안 묶었다고 날벼락? 게다가 저 검둥이 놈은 먹다 남은 돼지비계 몇 개 던져줘도 정신없이 꼬리 흔들고 난리인데, 나는 매달…….’

얼마 전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교수님께서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뭔지 아세요? 남이 하는 일이죠!” 그렇다. 우리는 나 자신의 소소한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타인의 고민이나 어려움은 잘 모른다. 가끔 아는 척을 할 뿐이다. 이 세상의 많은 불화는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타인의 마음, 타인의 생각, 타인의 어려움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기로 다짐한다.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직장 동료 선후배 간에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살펴준다면 뜻하지 않은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큰 다툼을 예방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살피기,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제주도내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 사람과 조직의 이해관계가 달려있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필자의 전공과 관계된 큰 것만 손꼽아 보아도, 제주 신공항 건설, 오라관광단지 개발, 녹지국제병원 승인, 카지노 이전 승인 등 적지 않다.

많은 경우 내가 주장하는 논리는 잘 알고 있지만, 상대방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만 태산처럼 중요하고 타인이 제기하는 주장은 티끌처럼 여긴다. 애써 귀를 닫거나,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린다.

그곳에 공항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대로 그곳에 공항이 들어서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귀를 기울여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보자.

오라관광단지를 유치하자는 분들도, 환경에 큰 위협이 된다며 반대하는 분들도 모두 제주를 사랑하는 도민들이다. 제주를 사랑하는 방식과 이유가 조금 다를 뿐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이 개원하면 어떻게 되는지 얘기를 잘 들어보고 같이 모여 마음을 터놓고 조목조목 점검해보자.

역지사지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다.

나는 제주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얘기하지만, 상대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저런 주장을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2018년에는 우리 모두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경청, 대화를 통해 개인적 사회적 관계에서 역지사지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의견과 주장이 엇갈리는 모든 상황에서 문제해결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부부간의, 부모 자식 간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