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미리 동박낭 강알에 벽력 같은 꽃이 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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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석화갤러리
▲ 쉰 한 번째 바람난장이 석화갤러리에서 진행됐다. 유창훈 作 ‘바람난장 영천도원을 꿈꾸다’.

동백이 한 잎씩 제 몸을 열 때마다
파도도 한 구비씩 제 품을 벌리나
한 구비 붉은 파도가 한 잎 꽃을 받는 마을

 

핏물 밴 숨비소리 평생을 길어 올리며
마을의 동백숲이 숯불을 지피는 날
물 첩첩 이랑 헤치며 어머니도 돌아오시나

 

하늘과 물의 몸이 따로 살지 않으니
천둥도 해일도 한 목숨으로 돌아드는데
위미리 동박낭 강알에 벽력같은 꽃이 피나

      
박명숙의 ‘동백나무 아래’ 전문

 

석화갤러리가 있는 서귀포시 토평동.
나신이 된 가로수 중 유독 붙드는 한 그루, 파란 하늘 아래 익다 지친 감들이 감물 토할 듯 시 한 편씩 쓰고 있다.

 

‘갤러리에서 시를 만나다’ 숨비소리 시낭송회와 바람난장의 만남!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를 마치고 갓 진열한, 김미령 화가의 갤러리가 정갈하다.
삽시에 갤러리는 북적이고 어느 화폭 안 연륜이 밴 가지 끝, 뭉툭하게 나앉은 큰 눈들 앞에 옴짝달싹 못한다.
작가의 숨 멎던 시간으로 잠시 깃든다.


어느새 단골 출연인 나종원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가의 ‘You raise me up’, ‘월량대표아적심’으로 서막을 연다.
연주 끝에 ‘월량대표아적심’은 ‘홍도야 우지마라' 정도의 중국판이라며 사회자인 김순이 시인은 명쾌하게 덧붙인다.

 

난장 단장인 오승철 시인의 인사말, “어느덧 제주신보와 함께한, 마지막 바람난장 53회를 앞둔 날입니다. 오늘 난장은 크리스마스의 이브 정도로 시와 음악과 노래가 풍성합니다….”

 

“조그마한 갤러리를 찾아줘서 고맙고, 자연의 마음을 담은 그림들도 감상해주시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김미령 화가의 인사다.

 

'사평역에서' 곽재구 시인의 시를 신희숙 낭송가가 낭송 전, 당시 대학생들의 책상 앞엔 이 시가 걸렸다며 ‘지금 창밖은 눈이 펄펄 내리고 막차를 기다리는 심정의 사평역 대합실….’로 배경 설정을 해놓는 사회자다.

 

‘El Condor Pasa’를 팬플륫과 오카리나로 넘나드는 서란영 연주가의 묘미가 더해진다.
‘황야의 무법자’도 오카리나 연주로 사로잡자 한 마리의 철새로 무법자로 잠시 누리게 된다.
 
천양희 시인의 '나를 당기소서' 시낭송에 앞서 사회자는 “천 시인은 대학 2년 선배인데 일생을 책만 읽고 시만 쓰며 사는 시인으로….”  정영자 낭송가의 “…. 신이여, 부러지도록 나를 당기소서/다시 부러지도록 힘껏 당기소서.” 꼼꼼한 해설 탓인지 여운을 극대화한다.

 

▲ 박명숙 시낭송가가 자작시 ‘동백나무 아래’를 낭독하고 있다.

서울에서 온 박명숙 시조시인의 '동백나무 아래' 자작시 낭송에 앞서 인사와 시작노트가 길다.
“시가 되지 않아 꽤나 애태우던, 위미리 둘레길 따라 드물게 핀 붉은 동백을 딱 한번 보고 가, 함량이 많이 부족하지만 가슴으로 조아리던 시간이 숙성시킨 시의 탄생 연유다….” 
‘….마을의 동백숲이 숯불을 지피는 날/물 첩첩 이랑 헤치며 어머니도 돌아오시나….‘

 

제주교향악단 이현지 단원의 '꿈을 꾸고 난 후에', '미뉴에트'를 첼로 연주로 감상한다.
가냘픈 연주가의 체구에 푹 안긴 첼로의 굵직한 선율에 매료되다 첼로가 부럽다고, 어루만져 주는 첼로가 되고 싶다고 이구동성이다.

 

'눈보라 속에서' 정희성 시인의 시를 김정호 낭송가가 목이 쉬어 걱정이라더니, 되레 뜨거움이 묻어온다.

 

이성선 시인의 시 '아름다운 사람'을 강은영 낭송가는 하늘이 쓰는 시가 나무인 듯 힘이 실린다.

 

고경권 하모니카 연주가는 연주마다 하모니카 한 대를 선물하고 있다며 서광에서 온 준서 어린이에게 박수 속에 증정한다.

 

‘등대지기’와 ‘Amazing Grace’, ‘기쁘다 구주오셨네’, ‘Silent Night, Holy Night' 캐럴 메들리 합창에 분위기가 고조된다.

 

▲ 이현지 연주가가 첼로 연주로 ‘꿈을 꾸고 난 후에’, ‘미뉴에트’를 선보이고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막을 내리며 갤러리 주인장 내외분이 준비한 선물에 "메리 크리스마스!"가 들려오고 풍성한 음악과 시낭송에 요긴한 해설까지 공간 데우던 자리로 선물 보따리 챙겨갈 듯하다.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음향을 전담해준 김 화가의 부군인 송순웅 씨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만년 소녀 같은 이미지로 사회를 도맡던 김순이 시인의 경계 없는 진행은 늘 백미다 .
제아무리 바람개비도 혼자 돌지 못하듯 더불어 아름답던 난장이다.

 

글=고해자
그림=유창훈
사진=문순자
시낭송=신희숙·정영자·박명숙·김정호·강은영
연주=나종원·서란영·이현지·고경권

 

※다음 바람난장은 30일 오전 11시,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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