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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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조선 성종 때 문신 손순효가 만취해 임금 앞에서 주정을 했다. 그러자 임금이 내관에게 부축해 나가게 했다. 그 일로 신하가 사직을 청하자 임금은 “취중에 한 말에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그러니 대죄하지 말라”고 전교를 내렸다.

당시에도 술을 먹고 한 실수는 용서가 되는 분위기였나 싶다. 그것도 임금 앞의 일인데도 말이다. 술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관대한 한국의 문화는 예부터 이어져 내려온 모양이다.

음주가무를 즐겨온 전통 때문일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를 묻는 독특한 인사법이 있을 정도다. 사고를 쳐도 “술 기운에 정신을 잃어서”라고 둘러대면 상당수가 통한다.

“그래 술이 원수지, 사람이 무슨 죄냐”며 대형 실수도 대충 넘어가기 다반사다. 지금도 우리는 유난히 회식·접대 등이 많은 ‘술 권하는 사회’다.

▲너그러운 술 문화가 어려운 말 하나를 유행시켰다. ‘주취감형(酒醉減刑)’이다. 죄를 저질러도 술에 취했으면 형을 깎아 준다는 뜻이다.

“술에 취해서…”란 말 한마디면 죄는 솜털처럼 가벼워진다. 형법 10조 2항이 그 근거라고 한다.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형을 감경한다”고 돼 있다. 술에 취한 경우도 심신장애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문제는 2008년 초등학생에게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흉악범 조두순에게도 이 조항이 적용됐다. 술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징역 12년형으로 감형됐다.

그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적용기준이 엄격해지고 있지만 그런 관행이 여전하다. 2020년 말 조두순의 만기 출소를 앞두고 청와대 게시판에는 이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별이 아파서 한잔, 기쁨을 나누려 한잔…. 음주 후엔 행패를 부린다든지 아예 필름이 끊기곤 한다. 요즘 TV드라마에서 아무런 여과 없이 일어나는 장면들이다. 몇몇 프로그램의 경우는 대놓고 음주를 조장한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음주 범죄가 극성을 부린다는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그 사회적 비용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무릇 술에 관한 추억과 낭만도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때의 얘기다.

음주운전은 강력하게 처벌하면서 술 마시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선 감형을 해준다는 건 말이 안된다. 음주 흉악범죄에 대해선 감형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더 엄중히 묻는 가중처벌이 옳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술을 심신미약의 범주에 넣는 것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바로잡지 않으면 자칫 주취자 공화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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