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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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돈, 농업/논설위원

벌써, 촛불혁명의 성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이 가결된 지 일 년이 지났다.

잘 알다시피 영국에는 지도층의 윤리를 대변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는 불문율이 있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필수적으로 높은 수준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의무를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탐정소설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이 당시 영국 사회를 주름답던 명사들에게 “모든 것이 탄로 났다. 빨리 런던을 떠나라. 셜록 홈즈”라는 짤막한 전문을 보냈더니 모두 도망치는 대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에게 이런 전문을 보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상상해 보라.

지도층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의무가 있다. 의무의 기본은 도덕과 윤리이다. 나는 지금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는가. 혹시 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소중한 권리나 사회적 이익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행동을 지시한 도덕적 판단의 기준 체계, 개인적 윤리강령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행동은 어떤 식으로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의적인 윤리강령의 명령이건, 다른 이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건 행동의 책임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

엄격히 말하면 가족 중 누구, 친구 그리고 직장의 상사와 부하와 동료의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그들의 행동이 비윤리적이라고 판단되면 궤도를 수정하게 해야 한다. 그의 행동 혹은 윤리강령이 조만간 당신의 행동이나 윤리강령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윤리적이어야 한다.

자동차를 운전 할 때 비상등을 켜 주는 것은 뒷차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차가 내 차를 받아 내 차가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인 것처럼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윤리적 행동을 해야 한다.

남들로부터 마음이 곱고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도록, 착하고 옳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가까이 하려고 할 것이다. 사람이 하는 하나 하나의 행동은 자국을 만든다. 그러기에 세월이 흐른 후에 남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걸 맞는 행동을 하여야 한다. 그럴 때 남들과의 인간관계가 건전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신도 행복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하늘과 양심 앞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소회는, 요즈음 사람들은 확실히 예전보다 부끄러움이 없어진 것을 느낀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부끄러움은 양심의 소산이다.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는 부끄러움이 없다. 인간만이 가진 양심의 소리는 매우 연약해서 짖눌리기 쉽다. 존 그리샴은 그의 소설 ‘The Chamber’에서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신가?”라고 묻는다. 매일 매일 세수 하듯이 양심과 부끄러움이 잘 지내는지 확인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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