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그 달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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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일회용 교통 우대권 카드를 자동 환급 기기에 넣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오백 원짜리 동전이 빠져나왔다. 주머니에 쏙 집어넣는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경기도 신도시까지 지하철을 공짜로 탔다. 그것도 서울시에 세금을 한 푼 내는 것도 아닌데,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우대를 받았다. 복잡한 열차 안에는 경로 우대석이 빈 채다. 깊숙이 앉아 허리를 펴는데 은근히 기분이 좋다. 타지인인 내가 이런 혜택을 받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선 외출 길에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버스로 이동하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지하에서 방향 감각도 없이 복잡한 환승을 하는 불편도 감수한다. 공항 버스비가 만만치 않은 까닭이고, 무임승차의 매력을 버릴 수 없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공짜의 달콤함에 이미 익숙해 있다. 한 번 길들인 맛은 쉽게 저버릴 수 없다. 종일 돌아다녀도 교통비 부담이 없어, 주머니가 얇은 노년층에겐 이만한 만족함도 없을 것 같다.

출근 시간이 지난 지하철은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시 외곽지 산행 노선은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로 붐볐다. 퇴직자나 노년에 여가를 즐기는 이들이다. 해마다 지하철 운행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경영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 지 오래다. 고령사회는 점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적자의 틈을 어떻게 무엇으로 메울지. 심각한 재정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다행히 무임승차에 대한 연령을 상향 조절할 것이란 소식이 들린다.

예전에 비해 지금의 노인들은 많은 혜택을 받는 셈이다. 노인정이나 복지관, 주민 센터의 문화교실까지. 음식 대접이며 무료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려,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일상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과거로부터 우리 사회는 어른을 공경하는 걸 기본윤리로 지켜왔다. 지금의 노년 세대는 역사의 격동기를 거치며, 역경을 이겨 온 한 시대의 어른이 되었다. 성실과 근면으로 근대 산업의 견인차 노릇을 해왔다. 그들이 힘이 없었다면, 오늘의 평안과 풍요가 있었을까. 예를 갖춰 대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한 면이 없지 않다.

정부의 예산에 여·야의 속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무조건 퍼주기 좋아하는 복지 정책에 걱정이 앞선다. 눈앞의 선심 정책은, 앞날에 곳간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희망은 보이질 않는다. 노력하지 않고 받아먹는 재미, 기초연금제도도 허한 점이 많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들이다.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자식을 위해, 두말없이 곳간의 빗장을 푸는 부모가 있을까. 정부도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자신들 몫이라고 떼를 쓰는, 국민들을 응석받이로 만든 것 같아 안타깝다. 고통과 인내가 한층 성숙한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다. 걱정된다고 다 받아주다 무기력한 자식으로, 정부에 의지만 하는 게으름뱅이 국민이 될까 걱정이다.

어른들도 그렇다. 대접받는 걸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공짜의 환상이 가져오는 후폭풍도 생각해야 한다. 후 세대에 무거운 빚만 안겨줄 뿐이다. 얼마 전 제주에서도 칠십 세 이상 노인들에게 교통복지카드를 발급했다. 제주는 기초연금 부정수급 미환수율이 전국 최고라 하지 않는가. 소득에 따라 철저히 선별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공짜로 주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라에 무작정 요구하고 기대기보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정부?국민 모두 서슴없이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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