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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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외국에 살면서 가장 안타까운 일 중 하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을 때다.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괜찮다고 하던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수술이나 암 치료를 받게 된다는 얘기를 전해올 때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태어나는 건 몰라도 늙고 병들고 죽는 건 고통스런 과정임에 틀림없다. 건강하게 살다 잠자듯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게 많은 이들의 소원이지만 그건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삶을 고해라고 하는 이유다.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올해 들어서 세 번 한국을 방문했다. 가까운 혈육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투쟁하는 모습을 잠깐이나마 지켜보았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들은 결국 혼자서 처절한 싸움을 벌이다 세상을 떠났다. 이전에 내가 가까이서 지켜본 대부분의 죽음도 다 그랬다.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켜보는 일 뿐이었다. 고통을 덜어줄 힘도 없이 곁에서 지켜보는 건 또 다른 고통이다. 그리고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그들이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도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다 갔다는 사실이다. 오락가락 하는 의식 속에서도 그들의 사투는 의료시설의 도움을 받으며 계속됐다.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사투였고 무의미한 고통이 아니었나 싶다.

패배가 예정돼 있는 싸움을 하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 하도록 생명을 연장시키는 건 그래서 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생명을 구하는 의술이 고문이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말기 암 등으로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회생할 가능성이 없을 했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매달리지 않고 존엄사를 선택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회생 불가능한 임종기에 이르렀을 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30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세브란스병원과 충남대병원 등에서 시범 사업으로 이런 서류를 접수하기 시작한 지 불과 40여일 만에 이루어진 기록이다. 내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런 사업이 시행되면 그 숫자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전망이다.

안락사 또는 존엄사가 인정되는 나라가 몇 안 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스위스와 네덜란드다. 특히 안락사를 주선하는 스위스 비영리기관 디그니타스는 존엄사의 대명사가 됐을 정도다. 말기암 등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약물을 사용해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조력자살이다. 이런 활동이 스위스에선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죽음의 결정권을 돕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봉사 활동이라는 판단에서다.

내국인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종식시키기 위해 스위스를 찾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그 중에는 한국인 신청자들도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제일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실제로 스위스까지 마지막 여행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단순히 고통 때문에 극단의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미가 있을 땐 어떤 고통도 받아들이고 이겨낸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고통도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땐 자신을 파괴하는 고문으로 받아들이는 게 인간이다.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느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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