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유수流水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무는 십이월이다.

언제부터인가 거리에는 ‘성탄절’ 트리와 캐롤이 흘러나오고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반사되는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본다.

인생의 면류관인 새치와 잔주름만 늘고 있다.

오늘 아침 아내와 딸, 그리고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보냈다. 매년 이맘때면 나라를 지키는 장병에게 편지를 보낸다.

부모 됨과 어른의 도리라 소식을 주고받은 지가 오래된 것 같아 봄날에 비추는 여린 햇살 마냥 따뜻한 마음을 하얀 편지지에 곱게 쓰고서는 “가서 안부 전해다오!” 하고 되 뇌이며 가까운 화북동 우체국에 가서 보냈다.

어린 시절에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가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편지는 얼굴을 마주하고 내뱉지 못하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털어놓게 한다. 쉽게 전하지 못하는 희로애락의 감정 표현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

요사이는 옛날과는 달라서 IT시대에 살면서 널리 사용되는 전자메일, 문자 메시지에 밀려 편지에 대한 정서情緖가 없으며, 펜을 잡고 하얀 종이 위에다 곱게 쓰던 시대는 사라져 멀리 있는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추억의 편지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 아쉬움만 남는다.

유년 시절, 편지를 쓰면서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편지를 쓴다.”며 행복을 말했다.

나도 그랬다. 젊은 날에 편지를 쓰고 깨끗한 하얀 봉투에다 예쁜 우표를 붙여 사랑하는 연인, 아니면 그리운 이에게로 편지를 띄우곤 했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편지를 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몇 해 전이다. 삼월 초, 어느 봄날, KBS 1TV를 보니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 마을에 혼자 사는 여인이 있었다.

사연인즉, 전선戰線에서 순직한 남편으로부터 편지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남편을 못 잊어 매일같이 우체국에 가서 남편의 이름으로 자기에게 편지를 띄운다는 감동적이었다.

사랑으로 일관한 편지의 사연들은 자신의 사상과 신념뿐 아니라 자녀들에 대한 교육과 소소한 일상사들을 담고 이런 절박하고 애정 어린 편지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편지이리라.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으로 감싸주고 돈독케 하는 천륜의 편지, 형·누나가 내게 주던 편지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먼 옛날의 우정을 나눴던 친구의 편지, 따뜻한 햇볕이 내려쬐는 봄날이면 희망노래 부르며 꽃무늬가 그려진 종이 한 장 꺼내들고 펜 글씨로 사랑을 고백하며 낙엽이 소소하게 지는 센티멘털리즘 연인들의 가을편지, 이 모두가 삶의 한 부분이었고, 세월이었기도 했다.

편지가 그리운 시절이다.

젊은 시절을 지내오던 사람이라면 이처럼 훈훈한 감동과 추억의 편지들은 마음속의 풍경화로 남고 있으리라.

저물어가는 십이월, 세모歲暮의 거리에는 송구영신을 알리는 ‘징글벨’이 울려 퍼진다.

저 멀리 휴전선에서 조국의 평화를 지키는 국군장병의 안부를 묻고,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 손에 들고 우체국에서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한 통의 사랑의 편지를 띄워 보내는 여유를 가져 봄 직도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