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석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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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논설위원
제주의 무덤은 주로 네모형이나 사다리꼴 형태의 산담으로 둘려져 있다. 그 안엔 동그란 봉분(封墳)이 있고, 그 앞과 좌우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동자석(童子石)이 세워져 있다. 동남(童男), 동녀(童女)의 형상인 동자석은 무덤을 지키고 조상을 섬기는 제주의 대표적인 석상(石像)이다.

평균 신장은 1m 이하로,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모양은 단순해 곡선 아니면 직선이다. 얼굴 부분이 전체의 3분의 1에서 절반을 차지한다. 계란형 얼굴에 하나 같이 웃을 듯 말 듯 하거나 무표정하게 보인다. 무섭다거나 근엄한 얼굴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머리 형태 또한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가 않다. 민머리. 쪽진 머리, 땋은 머리, 상투 등 그 다양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손에 들고 있는 기물도 술병, 촛대, 부채, 꽃, 창 등 다채롭기만 하다. 망자(亡者)의 사회적 위치와 신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주의 동자석엔 여러 종교가 융합돼 있다. 한라산을 숭배하는 무속은 물론 불교, 도교, 유교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이면서 제주인의 심성과 해학이 반영된 게다. 이에 따라 유교 문화의 중심권에서 잉태됐지만 변방인 제주까지 흘러와 제주 풍토와 정서에 맞는 석상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그 시기는 조선 중기 이후로 보여진다. 제주 동자석은 17세기에 서서히 발흥해 18~19세기 최고의 정점에 다다랐고, 20세기 후반까지 그 맥을 이어왔다. 죽은 자를 위한 ‘영혼지킴이’로서 숭배, 봉양, 수호, 장식, 주술, 유희 등 여러 기능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인들은 생전에 도움을 받고 살았던 동자를 죽어서도 데리고 살 수 있도록 무덤에 동자석을 설치해 왔다. 거기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이승이 곧 저승이고, 저승이 곧 이승이라는, 제주인의 내세관이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동자석은 제주인들의 삶과 의식이 깃들어 있는 제주 돌문화의 최고 걸작품이다.

▲제주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동자석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정원석으로 인기를 끌면서 1기당 수백만원에 거래돼 도벌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덤 앞에 있어야 할 수많은 동자석들이 무차별 도굴돼 서울 등 다른 지방으로 밀반출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만 하더라도 동자석 200여 기를 훔친 전문 절도단이 경찰에 적발됐다. 안타까우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동자석의 수난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러다가 아예 동자석의 씨가 마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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