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봉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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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일.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등산객 일행에 휩싸여 함께 삼각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먼저 구린굴(古林窟) 간판을 보니 “굴의 총연장 길이는 442m, 너비는 대략 3m 정도 되는 천연 동굴이다. 얼음 창고로 활용했던 선인들의 지혜가 보이는 유적이다.”라고 적혀있다.

구린굴을 지나 1㎞ 걸어가니 통나무 다리가 있어, 목교(木橋) 계단을 밟으니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천천히 세어보니 84+48+150=282 층계이다. 백팔번뇌(百八煩惱)란 숫자가 떠올랐다. 높고 가파른 마지막 층계를 밟고 올라서니 탐라계곡이 보였다.

510 고지에 이르자, 여기가 첫 번째 고비인 모양이다. 뒤에 오는 60대 중반 남자가 “옛날엔 높지 않았는데 왜 이리 높아!” 하면서 걷기를 멈춘다.

더 올라가니 석주(石柱) 모양의 큰 돌기둥이 양쪽에 서 있다. 중년 부인이 ‘해산굴’이라 하기에.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물었더니 “진통 끝에 아기를 낳지. 안 낳아 본 사람은 몰라요. 해산굴을 거쳐야 개미봉, 삼각봉을 뚫고 세상을 보게 된다고.” 하기에 ‘아! 그렇구나!’ 해산굴의 깊은 뜻을 알고는 열심히 기어올랐다.

해발 1350m에 이르자 바람 따라 안개가 휙 지나더니 햇살이 웃는다. 계곡 위를 쳐다보니 단풍이 더욱 아름답다. 가도 가도 끝이 없네. 운무에 가려 삼각봉이 보이지 않으니 더 힘들었다.

해발 1500m에 이르니 운무 속으로 옅은 세 개의 원형 지붕이 보였다. 바로 삼각봉 대피소였다.

삼각봉이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기에, 청년 관리 요원에게 삼각봉 유래나 전설이 있으면 말해 달라 했다. 특별한 전설은 없고, 큰 바윗돌이 삼각형 모양으로 생겨서 ‘삼각봉(三角峯)’으로 부른답니다. 친절히 말해 주는 청년이 고맙다.

운무에 가린 삼각봉 정상이 무딘 내 감흥을 한층 돋우기에 ‘삼각봉과 백록담이 둘이 아니고 하나로구나!’

혼자 흥얼거리며, 보았노라! 가노라! 다시 보자 삼각봉아! 손을 흔들어 작별하며 하산 길을 밟았다.

해산굴 가까이에 이르자, 예쁜 아주머니 둘이 앞질러 가기에, 쳐다보니 등 뒤에 등산 번호 0750, 0751이 보였다. 먼저 ‘0750 님’께, 오늘 제가 “죄를 많이 지어 삼각봉을 보지 못하고 가니 어쩌지요?” 했더니, 무슨 죄인지 알아야 갚아준다면서, 나더러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는다. 글쎄요, 마이클 노어 감독의 ‘빠삐용(papiiion)’을 빙자해 ‘시간을 허비하여 인생을 낭비한 죄’인가 봅니다.

어느새 목교(木橋)에 이르러 통나무 층계를 다시 세워보니 283 계단이었다. 삐걱 삐걱 소리 나는 통나무 다리 위를 걷자 ‘구운몽(九雲夢)’이 떠올랐다. 주인공 양소유(楊小游)가 팔선녀를 거느리고 다리 위에서 희롱한 죄로 ‘극락세계가 아닌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는 장면이다. 마침 세 여인이 내 앞을 지나가기에, 제가 통나무 계단을 세어보니 283개라고 했더니, 한 여인이 하는 말이 “참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유유자적해서 좋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여인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무슨 벌을 받습니까? 했더니, 뒤따라 걷는 부인이 “죄는 갚아야 하고, 벌은 받아야 하지만,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행복하답니다.” 하시기에, 정중하게 “대단히 고맙습니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즐기는 자만이 즐거움을 누린다. 자연을 즐겨 풍류를 즐기는 자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천천히 숲속 단풍과 자연을 관조하며 음미하면서 하산하니 마냥 즐거웠다.

드디어 관음사 입구에 닿으니 나무 위에서 “까옥까옥” 소리로 나를 반겨 준다. 나무 위의 까마귀들을 쳐다보고, 반겨주는 “까옥까옥” 소리에 내 어찌 화답(和答)을 멈추리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겉 검고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고려 말 문신 이직의 시를 읊으며 오, 아깝다! 삼각봉을 보지 못해. 이번 주가 피크라 하니, 삼각봉 구경하러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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