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그리고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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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동티모르 교육자문관, 시인/수필가

“거리 양쪽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데 무슨 일이 있나요?”

 

“가 보시면 알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입니다.”

 

일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내가 근무하는 베코라 기술고등학교 근처의 파울로 성당에서 미사를 보기로 했다. 9시쯤, 걸어서 20분 거리인 성당 근처에 이르자 성당 주변 4, 50미터 밖에서부터 길 양쪽으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시선은 모두 성당 건물을 향하고 있다. 무슨 사건이 생긴 것인지 내심 불안했다. 성당 안은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차 있고, 나무 밑, 성당 밖, 대로변 사람들이 모두 미사보러 온 신자들이었다. 제단도 신부도 보이지 않지만, 흘러나오는 스피커 소리만 듣고 참례하고 있었다. 그나마 조금 일찍 온 신자들은 창밖이나 열린 문틈으로 안을 훔쳐보며 미사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심훈의 계몽 소설 ‘상록수’가 떠올랐다. 손바닥 만한 교실에서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데,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이 매미처럼 창가에 나무에 매달려 공부를 훔쳐보며 익히고 있었다.

 

나는 이곳 언어인 테툼어 미사도 반쯤 참례하고, 이어서 시작된 포루투갈어 미사도 보았다. 이 미사 역시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신자들이 참석했다. 이곳에서는 성당에 따라 테툼어, 포루투갈어, 영어 미사를 봉헌한다. 길 건너 쪽에선 아주 큰 성당 건축 공사가 한 창이다. 두 개의 높은 종탑이 솟아 있는데 시멘트로 만들고, 완성된 곳은 흰색으로 칠해 놓았다. 완성되면 아주 웅대하고 아름다워 보일 것 같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지 15년밖에 되지 않은 21세기 최초의 신생국가다. 국토는 남한의 6분의 1, 인구는 120만 정도 된다. 동티모르(Timor-Leste)란 국가명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의 동쪽에 있는 평화스러운 나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인 우리나라와 서로 통하는 점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인구의 91%는 가톨릭이고, 개신교와 이슬람교가 일부 있다.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의 지배를 450년 가까이 받은 영향이다. 신자들의 신앙심은 대단해 보인다. 아침 미사에 가면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성당을 가득 매운 신자들이 매일 미사에 나오고 있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미사에 나오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일찍 일어나 식사하고, 걸어와 미사보고 바로 학교로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사 경본이나 성경을 갖고 다니는 신자는 없다. 미사 전례와 독서, 성경 내용은 컴퓨터 파워포인트로 성당 앞 벽면에 한 두 군데 띄워 놓는다. 독서 등은 주로 학생들이 봉독한다. 독립 전쟁으로 젊은이와 어른들이 너무 많이 희생되어 어린이들이 어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집 근처 다른 성당에서는 일요일에 주로 9시 영어 미사에 나간다. 이곳에서 성가도 물론 영어로 부르는데 모두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이다. 두 명의 아이가 기타 반주하고, 거의 30명의 아이들이 합창한다. 성가는 너무 맑고 성스러워 천상의 소리를 들려준다. 성가 책은 신자들도 아이들도 없다. 아이들은 노트에 가사만 손으로 적어서 배우고 익힌다. 음악적 감수성과 기억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동티모르는 1975년 인도네시아 침공으로 6만여 명이 학살당하고, 농경지가 황폐화된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20세기 초신생국인 이 조용한 동쪽의 나라 앞날에 다시는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일이 없고, 찬란한 햇살만 영원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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