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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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수필가

오일장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열린다.

 

살가운 이웃사촌들의 안부가 시나브로 궁금해질 때쯤, 오일장은 갑남을녀들의 가슴을 온통 선홍빛 그리움으로 들뜨게 한다.

 

그리움이 서로의 가슴들을 파고드는 오일장날 아침. 사람들은 주체 못할 설렘으로 삶의 짐 과감히 부려놓는다. 그리고, 멋쟁이들로 거듭난다.

 

땀에 밴 작업복 벗어 한 켠으로 밀어 넣고, 몸에 찌든 삶의 먼지 씻어낸다. 공들여 곱게 화장하고, 나들이옷 고르며, 매무새를 거듭 살핀다. 마지막으로, 장에서 살 물목(物目)들과 지갑의 돈을 재삼 견주어 보며, 알맞은 장바구니를 고른다.

 

그리고는, 메카 참배를 위해 길 나서는 순례자처럼, 의연하게 오일장을 향한다.

 

올레 밖 한길은, 화사한 꽃들로 피어난 이웃들의 발길들로 부산하다.

 

반가움 가득 담아 인사 나누고, 신명나게 어깨춤 들썩이며 정담을 나눈다.

 

오일장은 모처럼 삶의 질곡(桎梏)에서 해방되어, 소박한 쇼핑과 함께 덤으로 원근 사람들과 반가운 만남을 갖는, 서민들의 아고라(agora)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진득한 사람 냄새와 따사로운 인정으로 넘쳐나는 사랑방이다.

 

유년의 지평에서부터, 체화(體化)되고 중독되어 버린 오일장 향한 그리움.

 

장에 갔다 오시는 부모님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가슴 벅찬 기대였던가.

 

보채고 보채, 축복처럼 부모님 따라갔던 장마당은, 얼마나 넓고 화려했던가.

 

흘러간 세월 속에 풍화(風化)가 거듭됐지만, 그 추억 아직도 가슴 속에 핏빛처럼 선명하고, 오일장은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포근하게 품어준다.

 

트로트 음악의 흥겨운 가락 장마당을 휘돌며 울려 퍼지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흥정이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가격이 따로 없다. 기분 따라 좌우되는 엿장수의 고무줄 가격이다.

 

오일장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 구경이고 반가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오 일만의 만남이 대부분이지만, 뜻하지 않는 오랜만의 만남으로, 크고 작은 충격과 감동을 받는 경우도 있다.

 

만남은, 즐비한 음식점들로 서로의 손을 이끈다. 순대국밥과 막걸리에는 황량했던 지난 시간들이 추억으로 피어오르고, 마주 앉은 지인(知人)의 주름살이 밭이랑처럼 깊어 안쓰럽다.

 

좁은 시장길 가로막은 채, 맞잡은 손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다. 힘든 세상 건너온 사연들이 강물처럼 이어지는데, 돌아서는 뒷모습만은 들풀 같은 생명의 근력으로 건강하다.

 

오일장은, 자욱한 물안개 같은 인간의 향기로, 사람들을 흠뻑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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