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밖에서 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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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교수 중어중문학과/논설위원

오래전 나는 한 종단의 종립학교에 가서 여러 해 동안 강의한 적이 있다. 강의는 강의실에서 몇몇 스님들 앞에서 했지만, 학교에서는 내가 강의하는 모습을 찍어, 전국 각 곳에 계시는 스님들에게 보냈었다.

이전에는 강의실에서만 강의했고 그것을 녹화해 스스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어떻게 강의하는 줄 알 수 없었다.

물론 인터넷 강의를 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혼자 카메라 앞에 앉아 강의하였기 때문에, 매우 정제된 언어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나의 적나라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얼마 후 나는 내가 강의한 파일을 열어 보고 놀랐다. 화면에 비춘 나의 모습은 매우 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싫어, 안경인 듯 안경 아닌 돋보기를 쓰고, 책을 볼 때는 돋보기를 통하여 아래를 내려다보았기 때문에 보통 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가끔 수강생들을 쳐다보기 위해 눈을 치뜨고 보는 인상은 매우 좋지 않았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내 스스로가 표준말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강의시간 내내 너무 많은 사투리를 사용했고, 억양조차도 매우 거칠었다.

내가 강의한 것을 본다는 것은, 내가 나를 대상으로 놓고 평가한다는 말이다.

사실 나는 나를 모른다. 그러나 나를 대상으로 삼아 보면, 내가 무엇이 좋지 않은지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말을 하고 있을 때, 나의 심리 상태까지도 분명하게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그때 이후 나는 학생들에게, 훗날 취직하기 위해 면접할 때를 대비하여, 스스로 자기를 소개하는 모습을 찍어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기도 한다.

내가 막 학교에 부임하였을 때는 영원할 만큼 긴 시간 동안 학교에 남아있을 줄 알았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서서히 학교를 떠나야 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부질없었음을 알고, 떠나는 연습을 하며 스스로 학교의 외부자가 되어가고 있다.

내부자로 살아왔던 그 숱한 세월 동안, 보아야 할 것뿐 아니라 보아선 안 될 것들까지 수없이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동안 그 안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왜곡되게 판단했을 수도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그나마 외부자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구 밖의 우주인들의 눈에는 지구가 이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개인 간의 거짓과 살인, 그리고 국가 간의 전쟁 등이 난무하는 지구의 모든 것들이 우주인의 눈에 보일 까닭이 없다.

지구를 아름답게 보고자 하면 지구를 떠나면 된다. 설령 지구 밖의 우주인에게 지구에 대하여 들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떠나보지 않으면, 그 실상은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다 알 수는 없다.

서서히 떠나는 연습을 하고 있어서, 그나마 보인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내부자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볼 수 없고 온갖 비리와 음모만이 선명하게 보인다. 물론 그것조차도 모르는 숱한 사람들보다는 낫겠지만 말이다.

이제 곧 자리를 놓고 떠나야 할 사람이, 지난날의 잘못을 알고 반성하기는커녕 온갖 방법을 동원해 미래를 도모하려 든다.

박근혜씨와 그의 추종자들도 그들의 권력이 영원할 줄 알고 오만방자하며 잔인하게 굴었지만 이제 처참하게 추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떼 지어 방자하게 살아온 자신들의 미래가 두렵지도 않은 것일까? 말 없는 뭇 동료가 보고 있고, 제자와 자식들이 보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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