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걸어놓은 액자와 눈 맞춤을 한다. 노란 잎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액자 속 풍경이 호젓한 가을빛을 담고 있다. 데크 나무 울타리와 공중에 떠있는 나뭇잎들이 어우러지며 꽤 운치를 보탠다.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를 찍은 사진이다. 해마다 가지를 잘라주니 그닥 크지도 않고 수형도 아담하여 그나마 보기에 좋다. 수나무라 열매는 달리지 않지만 계절마다 다른 빛으로 찾아와 무뎌진 감각을 깨워준다.  
 


햇살이 찬란하던 어느 해 가을,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나무에서 노란 잎들이 아무 소리 없이 우수수 떨어지는 게 아닌가.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수많은 잎들은 공중에서 살랑거리는가 하면 뱅그르르 돌며 마치 춤을 추듯 사뿐사뿐 내려오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얼른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서툰 솜씨지만 여러 컷을 눌러 댄 덕분에 그나마 기대했던 장면을 몇 장 건질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기지를 발휘한 셈이다.
넋 놓고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그때, 그건 아주 잠깐 사이였다. 노란 잎들은 단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떨어졌다. 눈앞에서 벌어진 순식간의 일이었다. 무심결에 목격한 상황이라 휑하다 싶었지만 찬찬히 보고 있자니 나무는 수북이 쌓인 잎들과 그대로 한 몸이었다. 아! 은행잎의 이별은…. 마치 다 내려놓은 듯 초연해 보이지만 차마 속울음까지도 참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무언가 내 시선을 붙드는 게 있었다. 텅 빈 가지 위에 터를 잡고 있던 둥지, 새들이 떠나고 난 제법 큰 둥지였다.
해마다 나무는 봄에 아기 손톱만한 연둣빛으로 찾아와서 여름엔 풍성한 녹 빛을, 가을엔 찬란한 노란 빛을 선물해 주곤 했다. 그런데 그 뿐이 아니었다. 그동안 귀한 생명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게다. 나의 아둔함으로 한 울타리에 끼고 살면서도 그곳에 새들의 비밀스러운 안식처가 있는 줄 여태 모르고 있었다.
장자(莊子)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이라 하였다.
어쩌면 애초에 신께서 부여한 소명인지 모른다. 아마도 이미 알고 순응하였기에 헤어짐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마침 수화전(隨畵展) 행사를 앞두고 있는 터라 시수필로 정리하고 사진을 배경삼아 액자에 담았다.

 

늦가을 햇살이 찬란하던 날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노란 잎들이
바람에 실려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삽시간에 옷을 벗은 나무
아! 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새들이 떠난 빈 둥지였습니다

 

한 계절 새 생명을 지켜낸 잎들이
오로지 신의 경건한 부름에 순응하고 
기꺼이 돌아가는 몸짓이었습니다

 

오늘도 액자 안에서 노란 잎들의 춤은 계속된다. 나무와 헤어지는 은행잎들의 춤사위는 마치 이 세상에 와서 소임을 다하고 기쁘게 돌아가는 몸짓으로 보인다.


 
요즘 들어 어려운 화두가 마음속에 들어와 꼬리를 잇는다.
나는 누구인가. 신은 나에게 어떤 숙제를 주었을까. 분명 모든 존재는 부여받은 소명이 있을 터, 도대체 무엇일까.
오늘도 우주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고요한 시간에 마음을 침묵으로 채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간절함을 안고 사는가. 진정성 있는 용서의 가치를 알았는가…. 그리하여 언젠가 때가 되면 과연 기꺼이 돌아갈 수 있겠는가.
물음은 끊임없이 안에서 맴돌지만 그 분의 속을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어 잠시 묵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