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허투루 쓰고 있다⑵
우리말, 허투루 쓰고 있다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페이스북에 올린 거물급 정치인의 글에 맞춤법상 오류가 많아 눈살을 찌푸린다.

한둘이면 부주의로 간주하겠지만, 그게 어느 선을 넘으면 예삿일이 아니다. 까딱하면 우리말에 대한 기본 소양을 의심받는다. 말글살이에서 아무렇게나 말하고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을지 모른다는 진맥에 이른다는 뜻이다. 전문성을 꼬집는 게 아니어도, 우리말이 허투루 쓰여선 안 된다.

국어 표기는 매우 중요하다. 말을 문자로 기록해 남기는 것이므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말 곧 국민정신이 아닌가. 겨레를 하나로 묶는 튼튼한 유대(끈)가 바로 우리말이다. 그래서 정확한 표기는 몇 번을 강조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더욱이 자라는 세대를 생각해야 한다.

‘최류탄(최루탄), 꺼꾸로(거꾸로), 정락적(정략적) 판단’은 명백한 실수로 보인다. 소홀하면 실수할 수 있되, 한편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함께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가도록 하십시다.” ‘어려운’과 ‘난관’은 뜻이 중첩된다. ‘난관’의 ‘난(難)’이 어렵다는 뜻, 지나기 어려운 관문이 난관이다.

말에는 입말 따로 글말 따로라, 말하던 버릇이 글로 옮아가는 수가 많다. ‘만들어 볼려고, 보여 줄려고, 더 가질려고, 통제할려고’의 ‘~ㄹ려고’는 그냥 ‘~려고’로 써야 맞다. “만들어 보려고, 보여 주려고, 더 가지려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가 혹은 무심결 그대로 써 버리는 경우다.

“생각해 보십시요, 쌓으십시요, 명심하십시요, 강화하십시요”는 의당 ‘~십시오’로 바로잡아야 한다. 식당 같은 곳을 드나들며 현관 앞 넉넉한 깔판에 굵직하게 적혀 있는 ‘어서오십시오’를 노상 밟으며 오가는데도 그런다. ‘~십시요’로 잘못 쓰고 있다면, 맞춤법 이전에 주의 산만한 습관을 탓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른다. 관심이 주의를 환기시킨다.

‘국민 상대로 선전전을 벌리고’는 웬만큼 기본이 돼 있지 않으면 딱 걸려들기 십상인 말이다. ‘선전전을 벌이고’라야 한다. ‘벌리고’는 그 쓰임이 아주 다르다. ‘두 손을 벌리다. 가랑이를 벌리다’처럼 양자(兩者) 사이를 넓히거나 뜨게 할 때 쓰는 표현이다. ‘벌이다’는 ‘여기저기 일을 벌여 놓고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와 같이 쓴다.

‘뚜렸합니다(뚜렷합니다), 칼을 꼽고(꽂고)’에 이르러 안타까움을 더한다. ‘뚜렸하다’라 쓴 건 무관심의 소치로 보이고, ‘꼽고’는 경상·전라 방언의 영향일 테다. 경상도 말에선 ‘으’ 모음을 발음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슬픈 일’을 ‘설펀 일’, ‘슬기롭게’를 ‘설기롭게’로 말하지 않는가. 그밖에 전 대통령 연설을 들으며 웃던 ‘갱제(경제)적으로’는 전문가의 언어교정을 받고도 고쳐지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걸직한(걸쭉한), 지리(지루)한 장마, 오랫만(오랜만)에, 두루뭉실(두루뭉술) 해명하지 말고, 메세지(메시지), 논란이 가열차게(가열하게) 있었던 적이’는 여차해 잘못 쓰기 쉬운 것들이다. 특히 ‘지루하다’는 본디 ‘지리(支離)하다’에서 온 것이라 실제 언어생활에서 헷갈리는 수가 있다.

‘유감스런(유감스러운)’은 글 쓰는 일부 작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어 되레 혼란을 부추기고 있지 않나 싶다. 나 자신 명심해 쓰고 있다. ‘~스럽다’에서 나온 말이니(ㅂ받침이 ‘우’로 변함), ‘~스러운’이지 ‘~스런’이 될 어법적 이유가 없다. 특히 문학 장르 중에서도 우리말의 파수꾼이라 할 수필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스런’이라 쓰고 있다면, 자신을 혹독히 잡도리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표기상 도를 넘는 오류, 한마디로 우리말 파괴 행위다.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