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後)문학, 문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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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마음의 눈이라는 것도 있어?”

 

“그럼 우리에겐 수많은 눈의 창문이 있단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 창문이 열리거든. 그 맨 안쪽 마지막 창까지를 열면 바람도 보이고 하늘 뒤란도 보이는 거지.”

 

학교도서실에서 찾은 책 ‘오세암’에 나오는 대화의 일부이다. 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새내기교사에서 벗어나면서 아이들에게 열정을 다하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난 그렇게 정채봉 동화 ‘오세암’을 읽고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면서 주인공 길손이와 설정스님도 만난 적이 있었다.

 

이후 나도 동화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세암 때문이었을까? 그 생각은 등단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동화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동화를 써 온지가 벌써 사반세기가 다 되어가고 있지만 독자들을 울리는 동화를 과연 몇 편이나 창작했을까?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오세암과 같은 동화를 써야겠다는 마음은 늘 지니고 있다.

 

지난 시월 중순 ‘문학의 숨비소리’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국 문학인 제주포럼이 열렸었다. 처음 열리는 문학행사라 그런지 문학인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전국문학인들이 초청되고 개막식과 다섯 개 세션으로 나누어 포럼이 이어졌다. 다양한 주제발표와 토의가 있었지만 모든 화두는 결국 문학의 위기와 미래로 모아졌다.

 

내가 등단할 시기만 해도 소수였던 문인들의 숫자가 지금은 제주문인협회와 제주작가회의 회원들만 5백여 명에 가깝고 전국적으로 3만여 명에 가까운 문인들이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각종 문예지만 수백 종에 가깝다보니 매월마다 수백 명씩 등단을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인이 되려고 하는 걸까? 문인은 글을 빚어 조각하는 예술가이며 그러기에 그가 창작하는 문학에는 일정한 짜임과 흐름 속에 감동이 스며있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래서 힘든 일이다.

 

독일 소설가 토마스만은 다른 사람들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해야 하는 사람이 문인이라고 정의했으며 또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명작은 수십 번 고쳐 쓰고 다듬는 고통을 통해 탄생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이사장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이들이 생산해내는 문학작품이 연간 6천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이러한 문인들 대부분은 60대 중반이후 후(後)문학파들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젊었을 땐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퇴직 후 문인으로 살아가는 후(後)문학파 문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문단에 과연 독자들은 누구일까? 문인들끼리만 작품집을 서로 돌려 읽는 서로 독자들은 아닐까? 후문학인들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문인이기에 명함보다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일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계절은 상강을 지나 입동으로 치닫고 실루엣 속으로 사라지는 가을은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이 가을 끝자락에서 독서를 해보는 건 어떨까? 정채봉 동화 ‘오세암’에서 부처가 된 길손이를 만나는 것도 좋고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책을 읽고 독서토론까지 이어진다면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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