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제주가 자신의 뿌리임을 잊지 않는 자수성가형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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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매출 300억~500억에 이르는 숙녀화 유통회사 일궈
개성공단에 구두공장 세웠으나 12년 만에 철수 ‘시련’도
고양상의 회장 역임, 사회봉사 및 기부 활동에도 ‘앞장’
▲ 고문중 회장.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기업에서 근무한 이력도 없다.

 

제주에서 평범한 신발가게 장사를 시작으로 연간 매출 300억~500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숙녀화 유통회사를 일궈낸 고문중 평화유통 회장(65)은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기업인이다.

 

정직을 모토로 투명한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사회봉사 활동과 기부를 통해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기업을 만들어가고 있는 고 회장은 자신의 뿌리가 ‘제주’임을 강조하는 제주인이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

 

고문중 회장은 제주시 용강동에서 밭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4남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고 회장은 “당시 용강동은 소와 말을 키우고 밭농사를 하던 중산간 마을인데 4·3 사건 때 가옥들이 대부분 소실되는 바람에 움막이나 다름없는 집에서 살았다”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초등학생 때는 마을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는 봉개초를 걸어서 나녀야 했고, 중·고등학생 때는 당시 오현단에 있던 오현중·고를 왕복 4시간씩 8㎞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서 통학을 했다. 하지만 가정 형편으로 인해 오현고를 졸업하지 못한 채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는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올라가 독학으로 공부를 하며 직장생활을 하다가 군 입대를 위해 다시 제주로 내려왔다.

 

▲신발 유통업에 뛰어들다

 

군복무를 마친 후 고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조그만 밭에서 수박농사를 지었다.

 

“새벽 4시부터 밭에 가서 일을 하고 책을 보며 수박 재배 기술을 익히면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수확 때가 돼서 중간상 아주머니에게 팔려고 하니 생산비 밖에 쳐주지 않겠다고 하자 그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직접 수박 판매에 나서게 된다.

 

그래서 얻은 수익금이 생산비의 두 배가 넘은 것이다.

 

그 때 고 회장은 농사를 짓기보다는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수박 판 돈 등을 모아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 제주시 서문시장 입구 평화신발이었다.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

 

고 회장은 “수박 중간상 아주머니가 생산원가에 수익금을 조금 더 쳐줬다면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을지 모른다”며 웃음을 지었다.

 

▲ 고문중 ㈜평화유통 회장(사진 왼쪽에서 네번 째)이 ‘연예인 신발’로 널리 알려진 자사 신상품을 홍보하고 있다.

▲평화유통, 국내 최대 숙녀화 유통회사로 성장

 

제주에서 3년 동안 신발가게를 운영했던 고 회장은 1980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으로 장사의 터전을 옮긴다.

 

이 때부터 신발을 아웃소싱으로 공급 받아 백화점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고 회장의 납품하는 신발은 가격에 비해 성능과 품질이 좋아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1990년대 초에는 중국에 법인공장을 세워 아웃소싱으로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고, 1999년에는 국내 공장과 물류센터가 필요해 고양시 일산신도시로 회사를 옮겼다.

 

고 회장은 “판교와 일산에 같은 가격에 비슷한 규모의 부지가 있었는데 남북 경제교류를 염두에 둬 개성과 가까운 고양으로 회사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유통은 회사 이름대로 유통이 중심”이라며 “300~500억대에 이르는 회사 매출액 비율도 유통이 70%, 제조는 30%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신발 브랜드도 로베르타 디 까메리노(Roberta Di Camerino), 아이런스(Airens), 스티유(Stiu), 라세르(Racere), 세컨슈(2nd shoe), 리리안(Ririan) 등 10개에 이른다.

 

지난 8월에는 연예인 신발로 불리는 패션슈즈 ‘라그라치아 바이 스티유’를 새롭게 선보였다.

 

특히 평화유통은 미아를 방지하고 치매 노인 실종을 줄이기 위해 신발에 자가발전이 가능한 GPS 위치 추적 장치를 장착하는 스마트 슈즈 상용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소프트웨어 융합 상용화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개성공단 진출과 좌절

 

고문중 회장은 2006년 개성공단에 제1호 구두공장인 ‘평화제화’를 설립했다.

 

공장 신축과 기계 설비 등에 총 52억원을 투자했다.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자 10명이 개성공단에 들어가서 북한 근로자 520명을 가르켜 숙련공으로 탈바꿈시켜 연간 10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했다.

 

하지만 12년 동안 가동했던 개성공단 구두공장은 지난해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철수를 해야만 했다.

 

고 회장은 “지난해 구정 직후에 갑자기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가 내려지는 바람에 신발 한 켤레도 갖고 나오지 못했다”며 “더욱 아쉬운 것은 북한 근로자들과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진 것”이라며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북한 근로자들이 처음 3~4년은 제대로 된 구두를 만들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수준 높은 제품들도 잘 만들어냈다”면서 “지금도 북한 근로자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또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남북의 경제교류를 위해 개성공단 가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양상공회의소 회장 추대

 

고문중 회장은 2014년 1월 제3대 고양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됐다.

 

회장으로 취임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내부의 갈등 수습, 그리고 회원 간 소통과 화합이었다.

 

그는 “부회장을 맡고 있을 때도 고양상의 회의를 가면 파벌이 생기고 갈등이 많았다”며 “상의 회원들이 회장으로 추대하면서 최우선적으로 주문한 것이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월 3년의 임기를 마치자 주위에서 연임을 하라고 권유를 많이 했지만 회장직에서 미련 없이 물러났다.

 

“주변에서 연임 요청도 있었지만 회사 일이 바빠서 연임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여성 CEO 연합회가 고양상의에서 활발히 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등 회원 간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 고문중 회장(사진 가운데)이 지난 1월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신발 1만 켤레를 기부했다.

▲사회공헌 활동

 

고문중 회장은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북부사업본부에 고급 여성화 1만 켤레(1억5000만원 상당)을 기부했다.

 

추석을 맞아 관내 다문화 가정과 소외계층들에게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고 회장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해마다 1만 켤레의 구두를 기부하고 있다.

 

또한 평화유통 임직원들은 2001년부터 지체장애아동 복지시설인 ‘사랑의 동산’에서 15년째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농아인의 친구들’과 남북평화재단의 ‘함께 나누는 세상’에도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다.

 

▲고향 제주와 미래 발전에 대한 제언

 

고 회장은 자신은 제주 고씨로 제주도가 자신의 뿌리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올 추석 때 고향인 제주시 용강동을 찾아 마을 청년들에게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오면 미화위원장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며 “그 때는 전문가들을 불러서 고향 마을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듬뿍 쏟아냈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 봐도 제주처럼 바다와 산이 있고 공기가 좋은 곳은 없다”는 그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존해야 하지만 일정 부분의 투자와 개발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제주 발전을 위해 인구를 100만명까지 늘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누가 와서 사느냐도 중요한 문제”라며 “휴양지 마을을 만들어 부호들을 유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부호들을 제주의 휴양 마을에 살게 유도하고 많은 기부와 투자를 이끌어내면 무분별한 개발에서 탈피해 살기 좋은 제주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논리다.

 

“4~5년 후에는 6개월만 회사 일을 하고 6개월은 제주에서 살겠다”는 그는 “자식들도 나중에는 제주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한편 고 회장의 가족으로는 부인 김영해씨(57)와 1남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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