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악연 그리고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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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왜 이곳에 살고 있을까. 이런 소중함을 잃어버린 채 오늘을 무심히 아무의미 없이 지나쳐 버리는 건 아닌지 내일을 알 수 없는 이들에게는 지금 이시간이 보석보다 아름답고 천사의 미소와도 바꾸지 못할 만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또한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한다. 누구나가 부족함이 없고 화려한 세계를 동경하지만 때로는 슬픈 현실이 고민과 회환을 불러내기도 한다. 행복과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떤 목적이나 사명감으로 이곳에 있으며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반성을 가져보자.

인연이 아닌 이를 악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삶의 일부분이고 스스로가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다음 생을 그려보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지금이 아닌 화려한 변신을 원한다. 마치 동화 속 주인공처럼 하지만 지금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버지요 삼촌, 동생, 이웃, 친구 이러한 것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한다. 그들은 진정한 동반자이고 나의 성장을 위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사랑을 나누기 전에 물질 계산을 먼저 하는 이들의 끝은 약으로 고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얼마 전에 약속을 쉽게 바꾼 이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적이 있다. 가해자는 인격모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금전에 대한 집착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허황된 사치와 더 가지려는 이기심 만든 참혹한 최후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깊게 들어가 보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가진 부모나 남편 또는 아내 그릇된 사고를 가진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지키려는 어리석음이 이 불행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산자와 남은 자들이 이 숙제의 답을 알고자 노력해야한다. 업보이고, 갚아야 할 빚이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고 착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맹세는 바로 어제의 일이었으나 눈으로 보여 지는 것에 집착하며 부와 명예를 쫒아 다니며 이에 순응하고 남의 아픔이나 장애를 안아주지 못하는 이들의 한숨과 붉은 눈물이 멀지않다는 것을 깊이 깨우쳐야한다. 이 평범한 진리는 성경이나 불전에서도 찾을 수 없고 오직 내면의 나를 통해야만 볼 수 있다. 내 주변에 어려움과 안타까운 상황이 바로 언제나 찾고 원하던 신이 머무르는 순간임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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