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소라 유아이 대표가 경기도 성남 본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대기업을 다니던 남편이 창업을 하겠다고 했다(아내가 반대한다). 명문대를 나온 자녀가 창업을 한다고 했다.(엄마는 반대한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이했지만 아내와 엄마는 도전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되고 있다.

재능과 끼를 발산하지 못하는 수동형 인간을 원하는 걸까?

윤소라 한국여성벤처협회장(54)은 여성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여성이 창업을 이끌어 가는 롤 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유학길에 오르다=그는 1963년 전남 해남에서 2남 2녀 중 장녀로 출생했다.

부친은 해남에서 처음 목장을 세웠다. 목장을 크게 일구기 위해 1967년 젖소와 양떼를 몰고 제주로 이사를 왔다. 그의 나이 네 살 때였다.

집은 산지천 남수각 인근에 마련했다. 일도초등학교, 신성여·중고를 졸업한 그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이어 외국계 섬유기업에 입사했다. 회사에서 보내준 유럽 연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느끼고 공부를 더 할 겸 전문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도쿄에 있는 일본문화여자대학에서 섬유재료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글로벌기업인 이토츠상사에 취업했다.

일본에서 8년을 생활한 후 1989년 귀국했다. 이어 한국선구무역과 동도물산에서 의류를 디자인하고 수출하는 업무를 맡았다.

낮에는 바이어와 상담하고, 밤에는 미뤘던 업무를 처리했다. 오전 8시에 출근, 자정에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그는 17년간의 직장생활에서 승승장구하며 꿈의 연봉인 1억원을 받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평범한 주부로 돌아갔다. 아들 둘은 현재 대학생이다.

그의 남편은 르꼬끄·먼싱웨어 등 스포츠의류를 판매하는 데상트코리아 대표이사 김훈도씨(49)다.

김 대표는 데상트코리아 설립 멤버로 2000년 자본금 30억원으로 출발, 지난해 678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 윤소라 여성벤처협회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 8월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여성 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했다.

 

▲첫 번째 창업 망하다=경력 단절 후 전자부품을 수출하는 회사에 재취업한 그는 비서를 했다.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 저녁 6시면 칼 퇴근했던 그는 수행비서 8개월 만에 영업팀장을 맡게 됐다.

기존 팀장이 그만두면서 수입과 수출 업무를 동시에 할 수 있었던 그가 요직에 앉게 됐다.

일과 직장 모두를 책임지는 워킹맘이 될 수 있었지만 사장은 사위와 딸을 임원으로 데려왔다. 중견기업이 가족기업으로 전락하면서 직원들의 사기가 꺾이고 팀워크가 흐트러졌다.

“팀장으로서 직원들과 같이 가자며 응원했던 내가 먼저 사표를 냈죠.”

퇴사를 한 그는 2000년에 의류 업체를 창업했다. 1년 반 만에 쫄딱 망했다. 당시 강남에 있는 아파트 한 채 값인 2억7000만원을 날렸다. 직장 일을 하며 모아둔 돈이었다.

“섬유와 원단산업은 내가 잘 안다고 덤볐다가 실패했죠. 정보는 물론 준비도 부족했죠. 창업은 서두르면 안 됩니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죠.”

▲재기에 성공하다=전자제품회사에서 영업팀장을 했던 그는 휴대전화는 물론 자동차, 조선 등 모든 산업에 다양한 특수테이프를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됐다.

휴대전화가 떨어져도 박살나지 않고, 방수가 되는 이유는 각 부품마다 특수테이프가 감겨있어서다.

2006년 전자제품 테이프 및 광학필름 전문제조회사인 ㈜유아이(UI)를 차렸다. 직원은 5명에서 출발했다.

두 번째 창업은 철두철미하게 계산을 하고 시작했다.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망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일했다.

“2000년대 초반 휴대전화 시장이 뜨면서 특수테이프의 잠재성을 확신했죠. 테이프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일본 세이스키사를 찾아가 기술 제휴를 이끌어 냈죠. 처음엔 이런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가 2009년 평택에 공장을 세워 자체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유아이는 2014년 매출 3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매출이 줄었지만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베트남으로 시장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는 3M처럼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테이프회사를 일궈내는 게 목표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소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모습.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윤소라 대표.

 

▲여성벤처협회장에 오르다=지난 2월 한국여성벤처협회장에 선임된 그는 많은 여성들이 창업을 하고 우수 기업인이 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우선 선·후배 기업인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여성 기업인들의 애로를 수렴하기 위해 매달 한 차례 조찬 간담회를 열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 부처와 기관을 상대로 정책적으로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신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유아이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필름을 만들기 위해 일본계회사와 10개월간 밤을 새며 새 제품을 개발했다.

정작 제품이 나오자 대기업은 공급처를 다른 곳으로 변경해 큰 고비를 맞았다.

“남자들은 사우나 한번 같다오면 형님, 동생 사이가 되는데 여성들은 그러기 힘들어요. 남성보다 여성 기업에 투자가 적은 이유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불신이 있다고 봅니다. 여성 기업이라고 투자를 못 받거나 해외 진출에 어려움이 없도록 여성벤처협회가 똘똘 뭉쳐 힘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취업활동에 적극 나서야=그는 2년간 제주대학교 취업아카데미에 강사로 나가며 제주의 젊은이들에게 미래 비전을 제시해 왔다.

여러 중견기업 회장들이 제주에 내려가 취업활동을 돕는 강연을 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취업에 적극 나서질 않았다.

그는 취업박람회가 열리자 면접관으로 유아이 임원을 제주에 보냈다.

남편이 경영하는 데상트코리아에서도 제주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부스를 마련했다. 그런데 호응도가 너무 떨어져 박람회장은 썰렁했다.

“이런 취업자리는 쉽지 않은 기회인데 제주의 젊은이들은 소극적인 것 같아요. 취업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러질 않아서 안타까웠죠. 청년들이 외부 세계를 알아야 본인도 발전하고 제주도를 키울 수 있는데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면 제주도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일본은 각 지역마다 고향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인재를 채용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

그는 “일본인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생산된 상품에 자긍심을 갖고 최고로 여기죠. 이런 기업에 취업을 하고, 제품을 개발하면서 고향을 살리려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