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들어선 음식점은 한산했다. 단정한 제복의 여종업원이 목례를 하며 예약 여부를 확인한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터라 현관 긴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몇십 년 전 묻어놓은 타임캡슐을 꺼내는 심정이 이러할까.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손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데 초로의 남녀들이 동창회로 예약한 방을 찾는다. 순간 벌떡 일어나 일행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망설이다  “저어기…. 혹시 옛날 담임선생 찾으셔요.”  말을 해 놓고도 무안하다. 희끗한 머리의 어르신들이 낯설어서.

 

45년 만의 만남이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만국기 펄럭이는 가을 운동회, 솔방울 총 놀이, 울음바다가 됐던 마지막 수업 시간을 시작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미술 시간에 그림 도구를 가져오지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오늘은 완심이 그리기를 하자며 그림 모델을 했다는 담뱃집 둘째 딸. 오르간을 치며 노래 배웠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 지금도 그때 배운 ‘얼굴’이 애창곡 1번이라는 길이. 관찰일기를 많이 쓴 덕에 그림에 취미가 있다는 철이... 일본, 서울, 분당, 서귀포에 떨어져 살다 대형버스에 몸을 싣고 온 반백의 얼굴들. 여남은 살 동안童顔의 모습이 어른거려 눈시울 붉어진다.

 

1972년 ○○ 중앙교 4학년 4반
40여 년 아득한 추억의 거리는 얼마인가. 까마득히 잊었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백일홍 봉숭아 달리아 분꽃 맨드라미가 색색이 핀 화단에 밀짚모자를 쓴 노 교장 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김을 매는 모습이 보인다. 교장 선생님은 화단 주위를 돌아가며 노끈을 쳐 아이들이 넘지 못하도록 하셨다. 금줄이라며. 교육대학을 갓 졸업한 내가 처음 담임을 맡아 6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강냉이 식빵을 나눠 먹으며 울고 웃던 시간.
어쩌다 애면글면 보내놓고 아득해졌을까.

 

‘김연실 선생님 맞으시죠. 찾아뵙고 싶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화들짝 놀라는 심장 사이로 반가움도 잠시, 미안함 만 가득하다. 긴 세월 미욱한 새내기 선생을 잊지 않은 제자들에게 내 무심히 직무유기 같아서. 사제지간의 부딪힘 속에 나의 말 한마디에 누군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거나 수치심을 느끼게 한 적은 없었는지. 교장 선생님이 쳐 놓은 선의의 금줄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조심스레 화단에 들어가 꽃향기 맡으며 날갯짓을 멈춘 나비의 날개도 만져 보고 분꽃 씨앗을 받아 하얀 가루를 얼굴에 발라 보게도 했더라면... 밀려오는 회한에 잠을 설치다 일어나 앉아 글을 썼다. ‘ 사랑하는 제자들아! 40여 년 세월이 물 흐르듯 훌쩍 가 버렸구나.’ 중략. 45년 전 새내기 교사의 반성문인 셈이다.

 

드라마 같은 만남, 떠들썩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있었다.
감색 정장의 몸집 좋은 제자가 다가오며 묻는다. “선생님 저 기억나세요?”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얼굴. 난감하여 한참 얼굴만 쳐다보다 “정말 미안해. 많이 섭섭하겠지만, 아마 너는 조용한 모범생이었나 봐 .”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렇죠 선생님, 저는 5학년 초에 전학 온 시인입니다.” 동창 모임에서 선생님 얘기를 많이 들어 따라 나섰다며 본인도 오늘부터 제자라고 능청을 떤다. 휴,깜찍한 녀석.
 마이크가 내게로 오자 가지고 온 편지를 건넨 후, 목청을 다듬어 장시하의 시 ‘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더라’ 를 읊어주고  총총히 자리를 떴다.

 

무덥던 여름을 뒤로하고 가을이 날로 여위어 간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 낸다’는 피천득 선생의 말씀을 떠 올린다. 
40여 년 지난 생의 변곡점에서 제자들이 살려낸 인연. 누군가의 가슴 한켠을 반백년 차지하면서도 그 낌새조차 몰랐던 어리석음을 털어낸다.
재직 삼십년. 눈을 감고 서른 권의  흑백사진 속 아련한 얼굴들을 떠올린다. 부디 어느 곳에 있더라도, 설령 다시 못 만난다 해도, 모두 무탈하기를….
이제 또 한 해가 가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