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의 역사와 농가의 운명
감귤의 역사와 농가의 운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재범 편집부국장대우
감귤은 대한민국의 보물섬 제주 상징물 중의 하나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조정의 주요 진상품이었으니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고려사 세가 기록에 의하면 문종 6년(1052년)에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자의 수량을 일백포로 결정한다”라고 해 11세기 이전부터 감귤을 진상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백제 문주왕 2년(476년) 탐라에서 방물(方物)을 헌상하였다는 기록도 있는데 여러 정황으로 봐서 감귤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진상품 감귤은 종묘에 모신 선왕들의 영혼에 바친 뒤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나누어줘서 나라에서 학생들을 우대하는 뜻을 기렸다.

조선 명종 19년(1564년)에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귤을 나누어주면서 시험을 치르게 한 과거제도인 황감제(黃柑製)가 시행됐다.

정조는 즉위년(1776년) 황감제를 실시하면서 승지에게 “황감을 나누어줄 때 다투어 뺏어가는 난잡한 일이 있으면 유생을 정거(停擧)하고, 만약 단속하지 않으면 대사성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교할 정도로 황감 쟁탈전이 치열했다.

▲이처럼 귀하디 귀한 감귤 진상은 제주도민에게 크나큰 노역과 부담이 되기도 했다.

1526년 5개의 방호소에 과원(果園)을 설치했고, 1530년에는 과원이 30개소에 달했다. 중앙에서 요구하는 감귤의 진상 액수를 충당하기 위한 방책 때문이다. 특히 조선 후기 개인이 재배하는 사과원(私果園)의 징수를 늘리게 되자 농가에서 감귤 재배를 기피, 생산량이 줄고 진상 액수도 줄어들게 된다.

▲제주성에 올라 바라본 감귤밭의 귤이 익어가는 풍경을 일컫는 귤림추색(橘林秋色)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 달 1일 노지감귤 첫 출하를 시작으로 제주 전역은 정겨운 밭담 너머로 물드는 황금빛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올해산 노지감귤은 생산 예상량이 43만9000t으로 예측, 2003년 관측조사 실시 이후 사상 최저 수준으로 좋은 가격이 기대되고 있다. 관건은 잘 익은 고품질의 상품을 생산하려는 농가의 자세와 함께 유통, 마케팅 등에 대한 행정당국의 관심과 지원에 달려 있다.

역대 노지감귤 조수입은 2013년산이 5264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14년산 3435억원, 2015년산 2924억원으로 급락했다가 2016년산 4911억원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올해산 감귤은 농가에 웃음을 주는 귀한 효자가 될지, 고된 노동에 시름을 짊어지게 할지 주목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