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할 자유와 평온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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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백악관 앞에서 한 할머니가 35년째 반핵·반전 시위를 벌이다 작년 1월 80세 일기로 사망했다. 사진과 피켓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지만 경찰은 간섭하지 않았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하는 합법 시위였기 때문이다.

2006년 댈러스의 ‘이민자 차별 반대시위’엔 50만명이 참가했으나 연행자는 1명뿐이었다. 시위대는 미리 신고한 대로 1시간30분 만에 행진과 집회를 모두 마쳤다. 경찰 700여 명이 동원됐지만 진압보다는 안전사고에 주로 신경을 썼다.

우리의 경우 1980년대 독재시절의 시위가 마음이 편했던 측면이 있었을 법하다. 그 시절엔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서 시민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데모 현장에서 쫓기다 아무 데나 들어가 물 한잔 얻어 먹고 잠시 몸을 피했던 추억을 지닌 이들이 적지 않다.

▲경찰저지선인 폴리스라인(police line)은 시위대의 마지노선으로 불린다.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는 방어선의 상징이라고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것을 침범하면 폭도로 규정해 가차없는 징벌이 따른다.

2009년 워싱턴에서 민주당 하원의원 5명이 수단 정부의 국제구호단체 추방명령에 항의하다 체포됐다. 경고를 했는데도 폴리스라인 밖으로 나가지 않자 경찰이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명분이야 어떻든 위법에 대한 책임을 물었던 거다.

집회나 시위에 적용되는 저들의 원칙은 간단하다.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고 불편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사전 허가를 얻은 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진도 차도에선 거의 할 수 없다. 집회를 통한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실정법을 어긴 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경찰청이 도심 교통방해를 이유로 집회를 막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또 신고한 내용과 다른 길로 행진하더라도 폭력사태를 일으키지 않으면 허용키로 했다.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기로 한 거다.

“새벽 두 시에 차 한 대 없는 도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는 독일 사람이다.” 독일인의 준법정신을 거론할 때 쓰는 말이다. 이는 신뢰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즉각 제재에 나선다. 시위 때도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거나 도로를 점거하면 말할 나위 없다.

집회 시위의 자유와 시민의 피해 보지 않을 권리는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 소수의 자유를 넓혀주느라 다수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불법적 의사 표현 방법에 우리처럼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민주국가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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