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한 살이 되면 두발로 아장아장 걷기를 시작한다. 커가면서 걸음걸이는 익숙해지고 성인이 되면 걷는 것은 보편화되어 무거운 병환을 얻기 전까지는 걸으면서 인생을 난다. 사람은 걸어서 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해간다. 병을 얻어 걷지 못하여 눕거나 휠췌어를 타서 간병인의 도우미가 있어야하는 사람은 인생의 낙오자로 집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인생을 마감하러가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재활하여 걷기를 재생한 환자도 있어지지만, 두 병원 돌아다니면서 불가능한 환자들을 수두룩하게 보아 왔다. 내 인생에서 병신년 올해의 가을은 일생에 두 번째로 맞이하는 설움과 고난의 계절로 바뀌어 버린다.                                     
지나간 올해의 여름은 35.C의 수운주가 올라간 채로 밤이 되어도 25.C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 까지 겹쳐 그 기간이 장장 이 개월여 계속된, 말 그대로 폭염속의 최악의 여름으로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상흔을 남기고 갔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곡식이나 채소들은 가뭄으로 타 들어가 농심을 울렸고, 나무나 풀 과수원의 열매도 잎줄기가 자라지 못 하는 건 둘째치고라도 통째로  말라죽는 극심한 가뭄의 피해를 입는가 하면, 사육하는 동물들이나 바다에서 양식하는 물고기들도 떼죽음을 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하지만 계절의 순환은 때가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자연현상의 불변함을 영원한 순리이다.

 

8월의 막바지에는 단비 장대비가 연일 내려 가뭄의 해갈은 물론 아우성이던 농심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축산 과수원 양식업자들에게도 환한 웃음을 안겨주는 가을이 온 누리를 덮쳐준다. 조석으로 아니 한낮에도 풀벌레소리 귀뚜라미소리가 요란하게 가을 게절의 알림에 열중이다.  우리나라지구촌곳곳에는 서슴없이 9월이 시작되면서 선선한 가을로 접어들어 인생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하게, 천고마비의 호시절이 도래하여 피로한 서민들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3월의 중순에 찾아온 병환은 따사로운 봄이 가고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다시 이렇게 호시절인 가을을 맞이했지만 평상시의 건강으로 되돌아와 주지는 않는다. 재발한 뇌졸중 질환은 회복이 느리고 상당기간 재활치료에 노력해야만 한다고 한다. 고령이면 햇수가 불려 진다고 한다. 59세에 얻어진 병환을 재발하지 않으려고 20년이나 유념하며 건강유지에 심혈을 기우려 온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 20여년이나 예방하고 지켜온 건강유지가 하룻밤 사이에 문어져버리는 비극을  맞이한다.


 
나에게만이 주어진 형벌이다. 그렇게 요주의 인생을 살아왔는데 꼭 찾아내어 데려가려고 한 조물주가 원망스럽고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미 망가져 버린 인생을 원망하고 반항의식에만 젖어있어 손을 놓아서는 아니 된다. 체념해버리고 다시 발병후의 몸종을 재점검하여 재활의 꿈을 실현, 다시 한 번 병환전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필시의 노력을 경주해가고는 있다. 고령을 탓하지만 아직도 구순까지 10여년의 세월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체념하여 인생을 포기해 버리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

 

이상향을 쫓는 우리 인간사회에서 유토피아의 개념은 완벽한 인간의 완성을 갈망하는 염원이 담긴 무한대 일수도 있다. 인간은 욕심을 가진 동물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순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 하고 완벽해 지려는 습성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꿈꾸는 가을, 유독 나에게만은 평정심을 잃은 서운한 가을일지도 모르지만, 이 가을를 부르는 소리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만백성의 귓전을 자극한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수확으로 풍요로워지는 계절, 올 한철의 가을만이라도 삶의 안정과 여유로움의 가을이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