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극의 전성,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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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준 한국문인협회 이사 작가/논설위원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출연해서 시나 산문 등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 작품에 얽힌 사연을 통하여 예술인들의 삶과 인생에 대해 진솔하게 토로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체험과 감동을 주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 영향인지 근래에 들어 낭독극이라는 장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연극의 본향이라는 영국이나 미국의 브로드웨이, 일본, 우리나라에서도 낭독극 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가히 전성시대다.

낭독극의 특징은 평상복을 입고 분장과 화려한 조명, 무대장치 없이 연기자가 대본을 보면서 목소리로만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연극의 본령에는 벗어나서 딱히 연극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래 낭독극은 스테이지 리딩(Stage Reading) 즉 제작발표회에서 배우들이 목소리만으로 연기를 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주로 연극이 제작되기 전 제작에 참여할 스폰서를 찾기 위하여 쇼 케이스에서 작품 홍보하려는 효과를 노린다. 낭독극은 혼자서 묵독하는 것보다 소리를 통하여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고 같이 듣는 상대방의 느낌까지 전달받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개봉된 ‘아가씨’란 영화는 양반들을 모아놓고 성행위의 노골적인 장면을 여인의 목소리를 통하여 들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양반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 듣는다는 것은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이 여인의 역할이 전기수(傳奇?)다. 조선 시대 전기수는 소설의 상업화 가능성과 향유층의 저변을 확대시키면서 소설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다. 낭독극의 출연자들을 전기수가 진화한 것이라고 보면 꽤 역사가 깊다. 그러면 낭독극도 연극의 발전에 기여할까?

낭독극이 유행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제작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일부 연극 제작자들이 영화, 영상매체의 발전으로 관객들에게 외면당하는 연극계의 불황 상황에서 적은 제작비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낭독극에서 찾은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낭독극은 시각이 모든 감각을 지배하는 영상 시대에 청각적인 새로운 자극에 만족할 수 있다는 점과 어설픈 무대 장치, 배우의 발 연기에 관극을 방해받기보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극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라디오 드라마처럼.

관객들이 낭독극을 찾는 이유를 어떤 이는 세상이 너무 급속도로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대한 반항으로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의 본질과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낭독극은 분명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연극은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낭독극은 벗어나 있다. 또한 낭독극은 주로 시나 소설, 수필 등으로 그 영역을 넓힘으로 희곡이 쇠퇴의 길을 걸으리라는 것과 무대미술과 의상, 분장, 조명 등 스태프 분야 전문 인력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많은 제작비를 들인 정통연극에 대한 회피 또는 거부감을 조장하게 될 우려가 있다.

연기자들은 무대의 연기를 통해 연기력을 향상시키는데 목소리 하나로 승부하는데 맛을 들이다 보면 연출력이나 연기력의 후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완성의 독회를 대극장을 빌려 유료화하는 것은 연극 관객을 기만하는 일이다.

예술적 감흥은 등장인물 탐구에 대한 고뇌와 땀 흘린 연습 시간과 적절한 분위기, 상황을 만들어낸 스태프들의 노고와 배우의 치열한 열정이 결합되었을 때 만들어진다.

낭독극에 심취한 연극인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예술정신의 진정성과 연극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자문해보기를 바란다. 관객은 예술혼이 담긴 정통극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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