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해발 150m에 있는 폐채석장은 모터사이클 동호회원들이 즐겨 찾았다.

석산이 개발됐던 자리에는 큰 구덩이와 울퉁불퉁한 산길이 생기면서 오프로드(비포장 도로) 레이싱에 최적이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하기 전까지다. 지난 7월 14일 동호회원들은 석산 절개지 바위틈에서 고독성 가축분뇨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목격하고 제주시에 신고했다. 제주시는 콸콸 쏟아지는 분뇨를 받기 위해 물백을 설치했다.

자치경찰이 이곳에서 1㎞ 떨어져 있는 금악·명월리에 있는 양돈장을 조사하자 줄기차게 쏟아 나왔던 분뇨는 다소 줄었다. 그러나 8월 초까지 3차례에 걸쳐 고독성 분뇨가 계속 흘러나왔다.

자치경찰은 양돈업자 2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3곳의 양돈장에서 2013년부터 무단 배출한 분뇨는 1만3000t에 달했다. 제주종합경기장 실내수영장 6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빗물이 스며들어 지하수를 함양시켜주는 통로인 ‘숨골’에 버린 데 있다.

A농장은 분뇨 저장조에 수직으로 고무관을 연결해 숨골 주위로 분뇨를 배출했다. B농장은 모터 펌프까지 설치해 저장조에서 넘쳐난 분뇨를 숨골로 흘러들게 했다.

제주시는 분뇨가 흘러나오는 석산 절개지를 따라 계속 파 들어간 끝에 길이 70m, 너비 7m의 거대한 용암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천정에는 용암퇴적물인 종유석이 솟아 있었고, 용암이 흐를 당시 높이를 짐작할 수 있는 ‘용암유선’도 확인됐다.

이 정도 규모의 용암동굴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준비에 착수한다. 그러나 동굴 내부는 장화가 푹푹 빠질 정도로 분뇨 펄이 형성됐다. 분뇨와 함께 흘러든 돼지털도 나왔다. 천혜의 용암동굴이 고독성 분뇨로 오염돼 복구가 어려울 정도였다.

현장을 찾은 공무원들은 분뇨 일부가 지하수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분뇨를 몰래 버려도 지하 토지·암반층에서 계속 걸러주면서 분뇨 원액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곳 지하 동굴에선 농가에서 배출한 원액 그대로의 분뇨가 나와 지하수 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축산폐수를 무단 방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수 백 만원의 벌금형에 그쳤던 솜방망이 처벌과 양돈업자의 비양심이 결부해 제주의 생명수까지 오염될 상황에 놓였다.

돼지 1마리당 하루 5.1㎏의 분뇨가 발생한다. 돼지 3000마리를 키우는 양돈장에선 연간 1억원의 처리 비용이 든다.

지난해 말 기준 도내 296곳의 농가에서 돼지 56만4915마리를 키웠다. 양돈산업 연간 총매출액은 4140억원으로 농가 1곳당 평균 14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1억원의 분뇨 처리비용을 충분히 낼 수 있을 만큼 양돈업자들은 부를 축적했다.

정작 돈사 관리는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에 맡기다 보니 분뇨처리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시 공직 내부에선 항간에 돈사 현대화 사업 지원을 위해 찾아온 축산부서 직원에게는 커피를 대접하고, 악취를 측정하러 온 환경부서 직원에게는 사나운 개를 풀었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최근 2년간 신규 허가된 양돈장은 전무하다. 법적·행정절차를 갖춰도 마을 주민들이 동의해주지 않아서다. 거액의 마을기금을 준다고 해도 양돈장 설치를 반겨줄 마을은 나오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 수준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축산폐수와 악취는 나 몰라라했던 일부 양돈업자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웬만한 도민들은 평생 만지기 힘든 돈을 벌면서도 분뇨 처리비용이 아까워 숨골에 버린 결과, 양돈업계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으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