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사랑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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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논설위원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나라 이득만 추구하는 국가 지도자들, 핵무기까지 내세우며 겨루는 이 세계의 현실 상황은 우리가 지향할 궁극적인 가치와 삶의 방향에 대해서 다시 의문을 갖게 한다. 예술이나 학문적으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여겨지는 세계 문화유산들도 과연 제대로 된 삶의 가치를 구현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어떤 인류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북미대륙 원주민들이 오히려 훌륭하다고 본다. 자연계를 고스란히 보존하여 후대에 전하는 삶의 방식이 사실은 인류에게 가장 이롭기 때문이다. 강력했던 제국의 왕들이 남긴 유적들도 대지의 호흡을 막는 쓰레기 더미라고 할 수도 있다.

완벽한 예술품이라고 칭송되는 타지마할을 보자. 인도를 지배했던 무굴제국의 전성기에 샤자한(1592-1666) 왕이 분만 도중에 죽은 왕비를 위해 지은 무덤 궁으로, 공사 기간 22년 동안 날마다 2만명의 사람과 천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궁의 재료인 흰 대리석도 먼 곳에서 날라 온 것이지만, 내벽을 장식한 28가지 종류의 보석들은 중국과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와 아라비아 등 여러 국가에서 수입된 것들이라니 그 공력과 비용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알 만하다.

타지마할에 대해서 타고르는 ‘영원의 얼굴 위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 영국 작가 키플링은 ‘순수한 모든 것, 성스러운 모든 것, 그리고 불행한 모든 것의 결정체’라고 했다는데, 극에 달한 사치와 광기에 가까운 집념의 산물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 인 타지마할을 아그라에 가서 실제로 보면, 입구에 세워진 30미터 높이의 붉은색 사암과 대리석의 문부터 압도적이다. 문을 지나면 가운데 연못과 좌우에 대칭을 이룬 푸른 정원, 그 멀리 끝에 높이 서 있는 타지마할은 단아한 외양이 다가갈수록 입체감을 더해 웅장하다.

타지마할 공사로 재정이 바닥나자 샤자한의 아들은 그를 ‘아그라 성’에 가두었다. 그가 갇혔던 방도 흰 대리석 벽에 여러 색깔의 보석 꽃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죽는 날까지 창 너머로 타지마할을 보다가 샤자한은 왕비 옆에 안장되었지만, 나라의 뿌리는 완전히 흔들렸었다.

페르시아, 이란 출신의 건축가들과 보르도와 베네치아 등의 기술자들까지 참가했던 타지마할은 높이가 75미터, 돔 무게만 1만 3000톤이 넘고, 이슬람과 힌두교, 페르시아 문화를 융합한 예술의 완성이라고 한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인들이 돔의 금박을 떼어내고 구리로 대체하는 등 타지마할은 약탈의 대상이 됐다가 인도 독립 후 복원됐다.

샤자한 왕의 사랑 표현 방식이 좀 더 상식적이었다면 인도 역사는 달라졌을까. 1000마리 코끼리들이 무거운 돌들을 끌며 노역을 하고, 개미처럼 모인 2만명의 사람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반사광으로 눈을 쏘는 흰 대리석을 껴안고 다듬으며, 넝마를 두른 몸과 20만개의 갈색 손가락이 닳아버린 관절의 고통 속에 시들어 간 22년은 없었을 것이다.

흰 돌무덤에 보석과 백성의 피로 ‘사랑의 시’를 아로새기는 대신 왕이 모든 생명체가 사랑과 상실을 체험하는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느꼈다면, 바람과 물과 햇살, 겨울의 흰 눈과 가을에 익어가는 곡식과 열매들 속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다가, 시간이 다 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생명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타지마할 올챙이들이 꼬물거리는 연못 옆 잔디는 그 기하학적 무늬가 도드라지도록 두 사람이 수동식 기계를 당기고 누르면서 깎고, 궁의 외벽은 대를 세워 그물망을 치며 사람들이 올라가 닦고 있었다. 노역의 기념비는 사람들의 육체노동을 오늘도 요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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