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유성룡의 국난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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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식. 수필가

지금 우리나라는 전에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본다. 국내외 정세가 불안하다. 미국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이 말싸움이 무섭다. 밖으로는 김정은이 핵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위협하며 도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중국은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국제금융시장에서도 북핵 변수가 부상하고 있다. 지상보도에 의하면 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등 단체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해마다 실시해온 한·미 합동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도 중단하고 북한의 ICBM 공격을 방어할 사드도 철수를 요구했다.

선조 때의 명재상 유성룡(1542~1607)의 전설 같은 얘기가 있다. 유성룡에게는 바보 숙부(痴叔) 한 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숙부가 유성룡에게 바둑을 두자고 했다. 유성룡은 실제로 당대 조선의 국수라 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숙부의 말인지라 거절하지 못하고 두었는데 막상 바둑이 시작되자 한쪽 귀를 겨우 살렸을 뿐 몰살당하는 참패를 했다.

바보 숙부는 대승을 거둔 뒤 껄껄 웃으며 그래도 바둑 실력이 대단하네. 조선팔도가 다 짓밟히지는 않았으니 다시 일으킬 수 있겠구나. 이에 유성룡은 숙부가 거짓 바보 행세를 해왔을 뿐 이인(異人)아라는 걸 알고 의관을 정제하고 절을 하고 무엇이든지 가르쳐주시면 그 말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숙부는 아무 날 한 중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자고 할 것인데 재우지 말고 자기한테로 보내라고 했다. 실제로 그날 한 중이 찾아와 재워주기를 청하자 유성룡은 그를 숙부에게 보냈는데 숙부는 중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네 본색을 말하라고 해서 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치러 나오기 전에 유성룡을 죽이려고 보낸 자객이라는 자복을 받았다.

그리하여 유성룡은 죽음을 모면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의정의 자리에서 사실상 국난을 극복하는 주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바보 숙부 이인이 위기의 조선을 구했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25년) 일본 풍신수길이가 17만명의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명나라가 참전하여 7년간의 국제 전쟁이었다.

유성룡은 영의정으로 이순신을 발탁하고 선조를 설득하면서 국난을 극복한 명재상이다. 그는 명과 일본이 조선분할 논의를 감지하여 이를 저지시켰고 명의 조선 직할 통치를 저지시킨 탁월한 외교재상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성룡은 전시 조정을 이끌었으나 1598년 북인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관직을 삭탈 당했으며 1600년에 관직이 회복되었으나 다시 벼슬을 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저술 활동을 하며 고향에서 은거하였다.

유성룡은 일어나 중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자강(自强)을 강조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강정신으로 무장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평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대비하면 화를 피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무슨 난제가 생기면 지도자들은 단합하여 해결할 의지는 없고 당파논리로 국론분열 등 국사를 그릇되게 하여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면 절대로 안 된다. 국가안보가 당리당략의 논리로 갈라진다면 김정은의 웃음과 우리에게 오는 건 비극밖에 없다.

국가위기 시에는 나라를 위해 하나로 단합하고 애국하는 정신이 우리국민들에게 녹아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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